고등군사법원은 "자연스러운 신체접촉"으로 본 사건, 대법원은 "성추행 맞다"
고등군사법원은 "자연스러운 신체접촉"으로 본 사건, 대법원은 "성추행 맞다"
"추억 쌓자" 소령이 부사관 업으려 하고, 안아 올리고, 백허그 등 신체접촉
수차례 강제추행했지만 군사법원선 '무죄'⋯대법원이 바로잡았다

막 임관을 마친 1년 차 부사관에게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반복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A 소령. 4년 전 사건이 아직도 매듭을 짓지 못한 건 고등군사법원이 앞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ROTC 출신 소령 A씨가 재판정에 섰다. 근무지를 이탈하고, 막 임관을 마친 1년 차 부사관에게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반복한 혐의였다.
A씨는 피해 부사관에게 "추억을 쌓자"면서 수차례에 걸쳐 추행을 했다. 추행 방법과 장소도 다양했다. 지난 2017년 7월, A씨는 피해 부사관의 양손을 잡아끌며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렸다. 업어주겠다는 말이 이어졌다. 한 달 뒤에는 모 산림욕장에서 범행이 이뤄졌다. A씨는 피해자에게 물속으로 들어올 것을 강권했고, 이를 거부하자 강제로 안아 올렸다.
스크린 야구장에 데리고 간 뒤 "야구 스윙을 가르쳐 주겠다"면서 뒤에서 안기도 했다. 소령의 '불편한 명령'은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왔다. 4년 전 사건이 아직도 매듭을 짓지 못한 건 고등군사법원이 앞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소령(피고인)과 하사(피해자)라는 두 사람의 계급 차이만으로도 이 사건에 '위력'이 존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육군의 경우 최소 11년 이상 군 복무를 해야만 소령 진급이 가능하다. 이 사건 하사와 소령은 군인사법상 8계급 이상 차이가 난다. 군대 내에서 한참 계급이 낮은 부하가 상관의 요구를 거부하는 건 어려웠을 것으로 보였다.
이에 1심을 맡았던 보통군사법원은 A씨에게 강제추행 혐의 등을 인정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2심)을 맡은 고등군사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2심은 "피고인 행위는 객관적으로 자연스러운 신체접촉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특별히 추행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어 "성별이 다르고, 상관이 부하의 신체를 접촉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추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현저히 침해하거나, 도덕 관념에 반하는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불쾌한 신체접촉을 했을 때 성립한다. 하지만 고등군사법원의 판단 논리는 이와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그럴만한 상황이었다"고 피해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건 당시 피해 부사관은 A씨 행위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담은 기록을 휴대전화에 남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 군인들에게도 이 같은 사정을 토로했다. 또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불쾌감과 성적 수치심을 밝힌 상태였다.
'자연스러운 스킨십'에 불과하다는 고등군사법원의 안일한 판단은 대법원에서 깨졌다. 대법원은 "명백한 성추행"이라고 A씨 행위를 지적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이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에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무죄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다시 살펴보도록 했다.
대법원은 "사건 당시 A씨는 오랜 기간 복무한 남성 군인이고, 피해자는 임관해 약 1년간 복무한 여성 군인으로서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상관과 부하 관계였다"고 밝혔다.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엄연한 위력이 존재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어 "A씨가 저지른 일련의 행위들은 객관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행위"라고 봤다.
업어 주겠다거나 운동을 가르쳐 준다면서 피해자를 뒤에서 안고 손을 잡았던 A씨. 고등군사법원은 "그 상황에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신체접촉"이라고 봤지만, 대법원은 "그런 행위가 일어난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 셈이다.
이 밖에도 대법원은 "A씨가 피해자에게 수면실에서 함께 낮잠을 자자고 하거나 단둘이 밥을 먹자고 하는 등 업무 관계 이상의 관심 또는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냈다"면서 "A씨가 자신의 성적 만족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문제 행위를 했다고 충분히 추단할 수 있다"고 봤다.
세기말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피고인을 풀어줬던 고등군사법원. 결국 대법원으로부터 다시 공을 넘겨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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