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줄게" 속아 대포통장 개설 어르신들, 1천억대 범죄 가담 덫에 걸리다
"월급 줄게" 속아 대포통장 개설 어르신들, 1천억대 범죄 가담 덫에 걸리다
고령층 114개 유령법인·485개 대포계좌
1천억대 세탁 조직의 실체

범행에 사용된 대포통장 / 연합뉴스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월급식으로 수당을 주겠다"며 고령층을 꾀어 대포통장을 만들고 유령법인을 세워 보이스피싱 범죄수익 1,228억원을 세탁한 일당 31명을 전자금융거래법·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검거하고 이 중 6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검거된 일당은 2019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경남 지역에서 수입이 없는 고령층을 모집했다. 이들은 고령층을 명의자로 내세워 114개의 유령법인을 설립하고, 이를 이용해 485개의 대포계좌를 개설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계좌들은 총 223건의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세탁하는 데 사용됐으며, 1,228억원이 대포통장을 거쳐 현금이나 달러로 출금됐다. 이들은 출금 시 은행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회사직원으로 위장한 조직원이 유령법인 대표와 동행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거짓 진술 시나리오 학습" 월 200만원에 팔린 양심과 명의
이 조직은 명의자들의 조직 이탈을 막기 위해 150만원에서 200만원 상당의 월급 명목 수당과 명절 상여금까지 지급했다. 더 나아가, 명의자들은 과거 직장동료 등 지인까지 범죄에 끌어들이는 행태를 보였다.
특히 이들의 범행은 경찰 수사를 대비한 치밀함이 돋보인다.
조직원들은 계좌 명의자들에게 "법인계좌를 개설하면 대출해준다는 말에 속았을 뿐이고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거짓 진술 시나리오를 학습시켰다. 경찰 조사 중에도 조직원이 전화로 거짓 진술을 지시한 사례까지 파악됐다.
이러한 조직적인 행동은 고령층 명의자들이 단순히 기망당한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들이 자신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지하고 조직의 지시에 따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법을 몰랐다"는 어르신들의 주장, 법률적 효력은?
기사에 제시된 고령층 명의자들은 '월급을 주겠다'는 제안에 속아 자신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경우, 형사 처벌 수위가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1. 법률의 착오 인정 기준
형법 제16조에 따르면, 자신의 행위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오인한 경우,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벌하지 않는다.
- 단순 법률 부지는 면책 사유가 될 수 없어: 단순히 '법을 몰랐다'는 주장은 대부분의 경우 법률의 착오로 인정되지 않는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의 경우, 계좌가 불법적인 용도로 사용될 것을 미필적으로라도 용인했다면 고의가 인정된다.
- '정당한 이유'는 극히 제한적: 법률의 착오에서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려면, 행위자가 자신의 지적 능력을 다해 위법성 회피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다했는지가 핵심 기준이 된다. 유령법인 설립, 수당 지급, 거짓 진술 시나리오 학습 등은 이들이 정상적인 거래가 아님을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고령층 명의자들이 단순히 법을 몰랐다는 주장만으로는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법원의 판단 경향이다.
2.방조범 성립과 감경 가능성
명의자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을 몰랐더라도, 자신이 제공한 계좌가 불법적인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하고 용인했다면 방조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
- 방조범 형량 감경: 방조범으로 인정될 경우, 정범보다 형이 감경된다(형법 제32조 제2항).
고령층 명의자들의 예상 처벌 수위는? '집행유예' 가능할까
이번 사건의 명의자들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 및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 등의 혐의를 받는다. 유사한 판례들을 고려할 때, 명의자들의 개별적인 가담 정도에 따라 예상 처벌 수위는 다음과 같이 나뉠 수 있다.
1.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정
- 고령 및 판단능력 저하: 단순히 고령 그 자체는 심신미약 사유가 아니지만, 치매 등 정신질환이 결합된 경우 심신미약 감경이 적용될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고령은 형량 감경 및 집행유예 선고 가능성을 높이는 긍정적 참작 사유로 고려된다.
- 경제적 어려움 및 기망: 수입이 없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월급'을 미끼로 꾀었으므로, 경제적 어려움과 조직의 기망에 의해 소극적으로 가담한 점은 유리하게 참작될 수 있다.
- 소극적 역할: 총책이나 중간책이 아닌 단순 명의 제공자로서의 소극적 역할과 범죄수익 소액 취득 등은 감경 사유다.
2.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정
- 조직적 가담 및 치밀성: 거짓 진술 시나리오를 학습하고 실행한 점, 지인을 범죄에 끌어들인 행위 등은 불법성 인지를 강하게 시사하며 불리하게 작용한다.
- 범죄 규모: 1천228억원의 막대한 범죄수익 세탁에 기여하고 다수의 계좌를 개설한 점은 중대한 범죄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