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 뒷담화, 내용증명 받았다면?
직장 상사 뒷담화, 내용증명 받았다면?
"병XX" 욕설, 명예훼손 처벌될까…변호사 14인 총정리

퇴사 후 상사 뒷담화로 내용증명을 받은 경우, 소수와의 대화라도 전파 가능성이 있으면 '공연성'이 인정될 수 있다. / AI 생성 이미지
퇴사 후 날아온 변호사 내용증명. "상사가 가스라이팅만 한다"며 동료 2~3명에게 한 뒷담화가 원인이었다.
과연 사적인 대화도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처벌될까? 법률 전문가 14인의 의견을 통해 직장 내 뒷담화의 법적 책임과 대응 방안을 집중 분석했다.
"믿었던 동료에게 한 푸념인데…" 퇴사 후 날아온 경고장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동료에게 털어놓은 대가가 법적 분쟁이 될 수 있을까? 최근 한 온라인 법률 상담 플랫폼에는 퇴사한 직장 상사 문제로 법적 조치를 예고받았다는 A씨의 사연이 올라왔다.
A씨는 재직 중이던 2023년 12월부터 2026년 3월 사이, 부지점장과 지점장에 대해 "병xxx, 장애x, 가스라이팅만 한다"는 내용의 불만을 동료 2~3명에게 털어놓았다. 대화는 단체 대화방이 아닌 1대1 개인 자리에서 구두로만 이뤄졌고, 별도 메신저 기록은 없었다.
문제는 퇴사 후 발생했다. A씨는 상사 측 변호사로부터 '발언을 중단하라'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변호사는 통화에서 "고소를 진행할 예정이며, 추가 발언 시 이 또한 문제 삼겠다"고 경고했다.
믿었던 동료에게 한 푸념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될 위기에 처한 A씨는 "실제로 법적 조치가 이뤄지면 어떻게 처리될지 궁금하다"며 조언을 구했다.
법적 쟁점 '공연성'…1:1 대화도 전파되면 유죄?
A씨의 사연에 대해 변호사들은 '공연성'이 핵심 쟁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공연히', 즉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발언해야 하기 때문이다.
A씨처럼 소수와의 1대1 대화는 원칙적으로 공연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법원은 '전파 가능성' 이론을 통해 공연성을 넓게 해석하기도 한다.
법률사무소 새율의 윤준기 변호사는 "1대1 대화에서 한 발언이라도 그 상대방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공연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 실무상 일반적인 해석"이라며 "2~3명에게 구두로 말한 상황이라면, 전파 가능성 측면에서 공연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최근 판례 경향은 A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법무법인 경세 김정민 변호사는 "최근 판례는 친밀한 직장 동료 사이의 사적 대화나 불만을 토로하는 과정에서의 뒷담화는 전파가능성이 낮다고 보아 무죄(무혐의)로 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태림의 김정현 변호사 역시 "불특정 다수에게 퍼뜨린 게 아니라 소수에게 개인적으로 한 말이면 명예훼손 성립이 애매할 수 있다"며 처벌 가능성을 낮게 봤다.
명예훼손일까, 모욕일까? 처벌 수위는
A씨의 발언은 명예훼손과 모욕죄 중 어느 쪽에 해당할까? 전문가들은 '구체적 사실'의 적시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법무법인 경세 김정민 변호사는 "'병XX', '장애X' 등은 구체적 사실 적시가 아닌 추상적 비하 표현이므로 모욕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가스라이팅' 등 구체적인 상황을 언급하며 비방했다면 검토될 수 있으나, 단순 욕설 위주라면 주로 모욕죄가 쟁점이 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설령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처벌 수위는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정민 변호사는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초범이고 퇴사 후 발생한 갈등이라면 기소유예나 소액 벌금형(100만 원 이하)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민사상 위자료 청구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 시 위자료 청구가 가능하나, 단순 욕설의 경우 인용 금액은 통상 수십에서 백만 원 내외의 소액에 그친다"고 명확한 조건을 달아 설명했다.
내용증명 받았다면…'침묵'이 최선
그렇다면 A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변호사들은 '추가 발언 중단'과 '섣부른 대응 자제'를 한목소리로 조언했다.
법률사무소 파운더스의 하진규 변호사는 "내용증명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서류가 아니다"라며 "내용증명만 받은 상태에서 섣불리 상대방 변호사에게 연락하거나 해명하려 하는 것은, 오히려 불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게 될 수 있어 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 고소가 이뤄지면 증거 확보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윤준기 변호사는 "메신저 기록이 없고 구두 발언만 있는 경우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발언을 들은 동료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진술에 협조하지 않으면 입증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공명의 김준성 변호사는 "구체적인 상담 후 무혐의를 주장할지 상대방과 합의에 이를지 택해야 한다"며 "상대방과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직장 내 불만 토로가 예기치 못한 법적 분쟁으로 번졌을 때, 감정적 대응보다는 법리적 검토를 통해 침착하게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