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학대 방치한 아버지, '아들 목숨값' 절반 상속받는 아이러니
아들 학대 방치한 아버지, '아들 목숨값' 절반 상속받는 아이러니
법원, 친부의 학대 방조 책임 인정하면서도 '살해 고의 없다'며 상속권 인정
자식 지키지 못한 부모의 상속 자격, 법과 현실의 괴리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
계모에게 맞아 숨진 11살 아들, 그 죽음을 방치한 친아버지에게 법원이 아들의 목숨값에 해당하는 손해배상금 2억여 원의 상속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온몸에 멍이 든 채 11살 아들이 죽어갔지만, 아버지는 계모의 학대를 막지 않았다. 법원은 그 아버지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억대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동시에, 아들의 죽음으로 발생한 권리(손해배상 채권)의 절반을 상속받을 권리 또한 인정했다. 판결문 곳곳에는 아들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의 ‘자격’을 둘러싼 법원의 고뇌가 읽힌다.
인천지방법원 민사16부(재판장 박성민 부장판사)는 숨진 E(사망 당시 11세) 군의 친모가 E군의 친부와 계모 C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에게 3억 165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계모 C씨가 아동학대살해죄로 징역 30년을, 친부가 상습아동학대 및 방임 혐의로 징역 3년을 확정받은 형사재판에 이은 민사적 판단이다.
“아빠가 막았다면…” 친부 책임 명시한 민사 법원
이번 민사재판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친부 B씨의 책임 범위였다. 법원은 B씨가 아들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친부 B씨는 아들인 망인을 양육할 의무가 있는 친권자로서 계모 C씨가 망인을 학대하거나 살해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방지할 의무가 있다”고 전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친부 B씨는 계모 C씨가 아들을 심하게 폭행한 사실을 여러 차례 인지했다. 아들의 온몸에 든 멍을 직접 확인했고, 홈캠 영상과 아들이 쓴 일기를 통해서도 학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친부 B씨는 아들과 계모를 분리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에게 체벌을 가하거나 욕설을 퍼부으며 계모 C씨의 학대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재판부는 “만약 피고 친부 B가 계모 C의 학대행위를 방임하지 않고 망인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였더라면 망인이 사망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친부 B씨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가 계모 C씨의 살해 행위를 쉽게 만든 ‘과실에 의한 방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상속권은 인정…'살해 고의'의 벽
문제는 상속이었다. 친모 A씨는 “아들의 죽음을 방조한 친부 B씨는 상속인 자격이 없다(상속결격)”고 주장했다. 아들의 죽음으로 발생한 손해배상 채권 약 4억 7300만 원 전액을 자신이 상속받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법 제1004조는 ‘고의로’ 피상속인(망인)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의 상속 자격을 박탈한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친부 B씨의 행위가 ‘과실에 의한 방조’일 뿐, 아들을 ‘살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상속권을 제한하는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검사 역시 친부 B씨를 아동학대살해 혐의가 아닌 아동학대 및 방임 혐의로만 기소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법원은 B씨에게 아들을 살해하려는 고의까지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으므로 상속결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 판단에 따라 법원은 E군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 채권 약 4억 7300만 원을 친모 A씨와 친부 B씨가 법정상속분에 따라 절반씩 나눠 갖는다고 봤다. B씨가 상속받게 된 금액은 약 2억 3650만 원에 달한다.
친모의 피눈물, 법과 현실의 간극
법원은 친모 A씨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을 인정해 별도의 위자료 8000만 원을 책정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피고 B과 이혼한 뒤 사실상 아들과의 면접교섭이 차단됐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한 상황에서 아들이 학대당하여 사망하게 되었으므로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이 컸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친모 A씨는 자신의 위자료 8000만 원과 아들로부터 상속받은 2억 3650만 원을 합친 총 3억 1650만 원을 친부 B씨와 계모 C씨로부터 공동으로 배상받게 됐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민사적 정의는 실현됐지만, 자식을 지키지 못한 부모가 자식의 죽음으로 인한 재산을 상속받는 현실은 법과 국민 법감정 사이의 괴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