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포기 했는데 나 몰래 패소 판결… 이사 갔다가 법원 서류 못 받아 패소했다면
상속포기 했는데 나 몰래 패소 판결… 이사 갔다가 법원 서류 못 받아 패소했다면
변호사들 "추완항소보다 상속포기 증명이 우선"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이사 갔을 뿐인데, 알지도 못하는 소송으로 빚 독촉장이 날아왔습니다."
4년 전 아버지를 여읜 A씨 가족. 남겨진 빚 때문에 자녀들은 법원에 상속포기를 신청했고, 어머니는 상속재산 범위 내에서만 빚을 갚는 한정승인을 받았다. 법적으로 채무 관계를 정리했다고 믿었던 이들에게 1년 전 첫 번째 시련이 닥쳤다.
한 채권사가 소송을 걸어왔지만, 가족은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사실을 법원에 제출해 자녀들은 책임을 면했고 어머니는 제한된 책임만 인정받았다.
하지만 최근 또 다른 채권사로부터 날아온 변제요청서는 가족을 충격에 빠뜨렸다. A씨 가족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 또 다른 소송이 이미 진행돼 패소 판결까지 확정됐다는 내용이었다.
중간에 이사를 하면서 법원 서류를 받지 못했고, 법원은 '공시송달(소송 서류를 전달하기 어려울 때 법원 게시판 등에 공고해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로 재판을 끝내버린 것이다.
A씨는 "전입신고도 바로 했는데 서류 한 번 못 받아보고 패소했다니 황당하다"며 "채권사는 상속포기 서류를 보내라고는 하지만, 이미 나온 판결을 뒤집으려면 추완항소를 해야 하는 것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상속포기 했는데…'나 몰래 판결' 효력 있나?
변호사들은 상속포기를 한 자녀들에게 내려진 판결은 효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상속포기는 법원 심판으로 확정되는 순간, 상속이 개시된 시점(사망 시)으로 소급해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본다. 이는 채권자가 제기한 일반 민사소송 판결로 뒤집을 수 없는 강력한 효력이다.
법무법인 명륜의 오지영 변호사는 "상속포기 후 제기된 소송에서 공시송달로 패소판결을 받았더라도 A씨에게는 원칙적으로 책임이 없다"며 "일반 민사법원 판결이 가정법원의 상속포기 효력을 번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형식적으로 패소 판결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법원은 A씨 가족이 상속포기 사실을 주장하지 않았기에 채무가 그대로 상속된 것으로 보고 판결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채권자는 이 판결을 근거로 통장 압류 등 강제집행에 나설 수 있다.
추완항소 vs 서류제출, 최선의 대응은?
변호사들의 의견은 '추완항소'라는 정공법과 '서류 제출'이라는 실용적 해법으로 나뉘었다.
추완항소는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항소 기간을 놓쳤을 때, 그 사유가 없어진 날로부터 2주 안에 뒤늦게 항소를 제기하는 제도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는 "A씨처럼 전입신고까지 마쳤는데 서류를 못 받았다면 추완항소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한일 이광섭 변호사는 "강제집행은 선 압류 후 대응이 될 확률이 높아 어느 날 갑자기 통장이 압류되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추완항소를 통해 판결 자체를 바로잡아 이를 방지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판결 자체를 없애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취지다.
반면 다수의 변호사들은 더 간명한 방법을 제시했다. 채권사 요청대로 상속포기 심판 결정문을 보내는 것이다.
더신사 법무법인 장휘일 변호사는 "굳이 판결을 다투지 않고 상속포기 심판문을 채권사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실무적으로는 더 간명하다"고 말했다. 채권자 입장에서도 상속포기 사실이 확인되면 소송을 통해 얻을 실익이 없으므로 대부분 추심을 멈춘다는 것이다.
한정승인한 어머니, 책임 범위는?
자녀들과 달리 한정승인을 한 어머니의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하다. 한정승인자는 상속인이 맞지만, 책임 범위가 물려받은 재산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재판에서 피고가 이 사실을 직접 주장하고 증명하지 않으면 법원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채무 전액을 갚으라'고 판결한다. 공시송달로 진행된 이번 재판이 바로 그런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법무법인 창세 박영재 변호사는 "어머니가 한정승인을 받았다면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어머니 개인재산까지 집행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만약 채권자가 강제집행을 시도하면, 어머니는 한정승인 결정문을 근거로 '청구이의의 소' 등을 제기해 상속재산 외의 개인재산에 대한 집행을 막아야 한다.
A씨 가족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공시송달로 진행된 판결문을 확보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후 채권사에 상속포기·한정승인 결정문을 보내 대응하고, 그럼에도 채권자가 강제집행을 시도할 경우 즉시 법적 절차를 밟아 방어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