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오르네⋅불장난⋯이재민을 위한 플레이리스트, '악의'는 맞지만 '모욕'은 아니다
불타오르네⋅불장난⋯이재민을 위한 플레이리스트, '악의'는 맞지만 '모욕'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문제 있다" 생각되지만, 법적으로는 '문제 삼기' 어려워
이유는 경멸적 표현 없고, 피해자가 특정됐는지 불분명하기 때문

울산 남구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사고 이재민들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호텔에 이재민들을 조롱하는 듯한 쪽지가 발견됐다. /연합뉴스⋅A씨 페이스북 캡처
거대한 불길에 갇혔지만, 천만다행으로 모두 목숨을 건진 울산 남구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사고 이재민들. 그들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호텔에 이재민들을 조롱하는 듯한 쪽지가 발견됐다. "이재민을 위한 플레이리스트(playlist)"라는 제목의 쪽지에는 온통 '불'과 관련한 노래가 가득하다.
'불꽃놀이'
'불티(Spark)'
'불타오르네'
'불장난'
이재민 A씨는 "12일 아침 객실 안에서 이 쪽지를 발견했다"며 "불 속에서 구조됐던 저희를 향해 이런 리스트를 적었다는 건 도를 넘은 악의로만 느껴진다"는 심경을 자신의 SNS에 남겼다. 이 글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대형 화재로 집을 잃고 충격에 빠진 사람을 이렇게 조롱하는 건 도를 한참 지나쳤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저런 쪽지를 남긴 사람을 찾아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실제로 변호사들에게 이 사안을 물어봤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이재민을 대상으로 '조롱하는 내용'을 쪽지에 적은 게 분명해 보인다고 하면서도, "처벌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왜 그런지 정리해봤다.
우선 검토해볼 수 있는 혐의는 형법상 모욕죄다. 우리 형법(제311조)은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하고 있다.
법조문에 나와 있듯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①공연히 ②다른 사람을 ③모욕해야 한다.
변호사들은 이재민들 호텔에서 발견된 쪽지의 내용이 '모욕죄에서 말하는 모욕'(③)이 아니라는 점에서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률 자문

태연법률사무소의 김태연 변호사는 "모욕죄는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큼 경멸적 감정'을 표현해야 성립이 된다"라며 "해당 쪽지가 다소 무례하더라도, 이 부분이 성립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불'이 들어간 노래 목록을 적은 것만으로는 모욕죄에서 말하는 "경멸적인 표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법무법인 승운의 정석원 변호사도 "이 쪽지의 내용은 이재민에 대한 직접적인 경멸과 조롱이라기 보다는 불쾌함을 유발하는 무례한 표현에 가까워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법률사무소 우진의 김혜진 변호사 역시 "불에 대한 언급은 이재민들의 상황을 희화한 것으로 옳지 못하다"라면서도 "그렇지만 모욕죄로 성립될 만한 경멸적인 표현으로 보기엔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설령 해당 쪽지가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큼 경멸적 감정의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모욕죄 성립이 어렵다고 했다. 쪽지의 내용이 어떤 특정한 사람(②)을 대상으로 했는지가 불분명해서다.
김태연 변호사는 "이 쪽지의 경우 집단이 표시되지 않았고, '울산 화재 아파트 이재민'에 대한 글임을 '추정'할 수 있는 정도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다만, "어떤 이재민에 대한 것인지 등이 확인되지 않아 특정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실제 판례를 찾아봐도 어떤 집단에 대한 '모욕죄'를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판례 데이터상 집단의 규모가 50명 이하 수준이면 '집단모욕죄'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이상의 집단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번 화재 사고로 집을 잃은 이재민은 127가구, 3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50명을 훨씬 초과한다.
정석원 변호사는 "이재민의 숫자가 수백명에 이른다"라며 "판례상 집단에 대한 모욕이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혜진 변호사는 "집단명칭에 대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은 집단의 규모가 작고, 그 구성원이 쉽게 특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