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법원 "자기 할 일을 안 한 것은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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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법원 "자기 할 일을 안 한 것은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

2020. 06. 18 17:29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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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이중매도한 뒤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1·2심 '유죄'→대법원 '무죄'

주식 양도인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것인지가 쟁점

대법원 "주식 양도인은 '타인의 사무 처리하는 자' 아닌 '자기 사무 처리자'"

'주식 이중양도'에 따른 배임죄로 형사고소당한 A씨. 주식 양도인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것인지에 따라 1심과 2심에서는 유죄, 대법원에서는 무죄 판결이 나왔다. /셔터스톡

서울 강남에서 외식 사업을 크게 하는 A씨. 지난 2009년 그는 회사의 '발행 예정 주식'(주권 발행 전 주식) 5만 주를 B씨에게 팔았다. 매각 대금을 5억원으로 정했는데, 특약을 하나 달았다. 향후 B씨가 원한다면 5억 5000만원에 A씨가 되사간다는 조건이었다. 투자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다만 이 주식에 대한 양도통지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뒤 B씨의 아들 C씨는 A씨에게 주식을 되사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A씨는 자금이 부족했다. 줘야할 5억 5000만원 가운데 2억 2000만원만 지급하고 나머지 3억 3000만원은 주지 못했다. 주식으로 따지면 약 3만주에 대한 매매 금액을 주지 못한 셈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A씨는 C씨에게 회사를 통째로 넘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C씨는 당시 A씨의 회사에서 보유중이던 '〇〇〇〇〇커피'라는 브랜드가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A씨는 회사 발행주식 100%와 경영권을 양도했다. 여기에는 A씨가 다시 사주기로 했지만, 최종적으로 돈을 주지 못해 여전히 B씨 소유인 '발행 예정 주식' 3만 주도 포함됐다.


주식 이중양도에 따른 배임죄로 기소돼 1·2심서 유죄

A씨는 이로써 B⋅C씨 부자와의 채권 채무 관계가 모두 정리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B씨 생각은 달랐다. A씨가 보관 중이던 B씨 주식 3만주를 자기 동의 없이 C씨에게 넘겨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결국 A씨는 '주식 이중양도'에 따른 배임죄로 형사고소당했다.


배임죄(背任罪)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를 위배하면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사무를 맡긴 사람에게 손해를 가하는 죄다.


쉽게 말하면, 자신에게 일을 믿고 맡긴 사람을 배신하는 것이다. B씨 입장에서는 A씨는 "타인(B씨)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인데, 제3자(C씨)에게 주식을 취득하게 해서 B씨의 재산에 손해를 가했다는 논리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지난 2014년 7월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을 맡은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A씨의 이중 양도가 배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B씨로부터 주식 매각대금 5억 원을 모두 받고도 해당 주식에 대해 주주명부 명의개서나 주식양도통지 절차를 밟지 않고, 이를 제3자(C씨)에게 양도해 재산상 이익을 취하게 한 행위는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명의개서(名義改書)란 권리자의 변경에 따라 증권 명의인의 표시를 고쳐 쓰는 행동을 말하는 회사법의 개념이다. 권리이전의 사실을 공시하여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A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는 자신이 B씨에게 주식매매대금을 줄 의무를 지는 채무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즉, B씨의 재산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업무를 맡은 사람이 아니기에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2심 재판에서도 통하지 않았다. 수원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최규일 부장판사)는 "A씨의 배임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1심 판결에 사실오인이나 법리 오해가 있다는 A씨의 주장은 이유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양형부당 주장은 받아들여,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으로 형을 줄여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B씨에게 주식을 팔았고, 이 때문에 B씨가 제3자 대항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해줄 의무가 있기 때문에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3만 주에 대한 소유권이 있는 B씨에게 제3자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은 상태에서 회시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한 것은 문제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 "주식매각 증서 만들어 주는 것은 '자신의 사무'이지 '타인의 사무' 아니다"

A씨는 포기하지 않고 사건을 대법원으로 가져갔다. 대법원은 1,2심과 달리 A씨에게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제1부(재판장 박정화 대법관)는 지난 4일 "A씨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에는 배임죄 성립 요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주권 발행 전 주식에 대한 양도계약에서 양도인(주식을 파는 사람⋅이번 경우 A씨)은 양수인(주식을 산 사람⋅B씨)에 대해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며 "따라서 A씨가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고 주식을 C씨에게 이중으로 매각했다 하더라도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법무법인 신효의 오세정 변호사. /로톡 DB
법무법인 신효의 오세정 변호사. /로톡 DB

즉, 대법원은 주식 양도 계약에 따른 명의개서 등은 A씨가 해야 할 일을 안 했을 뿐이기 때문에 배임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봤다. A씨의 주장대로 A씨가 B씨의 업무를 처리해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더불어 대법원은 지난 2019년 판례에서 "주권 발행 전 주식의 양도는 양도인과 양수인의 의사표시만으로 그 효력이 발생하며, 주식 양수인은 양도인의 협력을 받을 필요 없이 스스로 자신이 주식을 양수한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회사에 명의개서를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B씨 스스로 제 3자 대항요건을 갖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신효의 오세정 변호사는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에 관한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아 판단하기 어려웠다"며 "이번 판결은 '타인의 사무'를 판단할 때 사무처리 권한의 전속성(권리나 의무가 특정한 사람이나 기관에 딸리는 경향)을 주요 기준으로 삼은 것에 의미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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