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공사 떠밀려 동료는 숨지고 전치 16주…법원은 왜 갑질 책임 묻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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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공사 떠밀려 동료는 숨지고 전치 16주…법원은 왜 갑질 책임 묻지 않았나

2025. 09. 16 10:12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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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1.4억 손해배상 소송 패소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계약에 없던 공사를 강요당했다고 주장한 작업자는 결국 중상을 입었고, 동료는 숨졌다. /셔터스톡

"계약서에도 없는 공사를 강요했습니다. 해주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횡포에 못 이겨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023년 9월,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흙더미가 무너져내렸다. 이 사고로 동료는 목숨을 잃었고, 작업자 A씨는 좌측 다리가 부러져 전치 16주의 중상을 입었다.


A씨는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 계약에도 없는 무리한 추가 공사를 강요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B씨의 '갑질' 때문이라며 1억 4천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동료의 죽음과 자신의 부상 뒤에 명백한 갑질이 있었다고 믿었지만, 법의 잣대는 냉정했다.


계약서 밖의 공사와 갑질 의혹

사건의 발단은 아파트 단지 내에 발생한 싱크홀이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상하수도 설비 전문업체와 1,900만 원에 보수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공사 범위에서 터져 나왔다.


업체는 싱크홀 주변부 보수와 인근 맨홀 연결이 계약 내용이라고 주장했지만, 회장 B씨는 "후문 쪽 맨홀까지 하수관을 새로 묻는 것이 당초 계약"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A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B씨의 압박은 도를 넘었다. B씨는 "계약 해지와 피해보상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심지어 "뒷돈을 요구하며 계약 범위를 벗어난 공사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B씨의 횡포에 두려움을 느낀 근로자들이 계약에도 없는 후문 맨홀 공사를 시작했고, 비극은 바로 그곳에서 발생했다.


법원이 갑질 대표의 손을 들어준 이유

참혹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서울북부지방법원 정용석 판사는 회장 B씨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공사 현장의 법적 책임을 누가, 어디까지 져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법리를 담고 있다. 현재 공사업체 대표는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별도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안전관리 책임은 '시공사'에 있다

법원은 가장 먼저 계약서를 살폈다. 계약서 제6조에는 '공사 중 발생한 산업재해는 공사업체가 모든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었다.


법원은 "근로자에 대한 보호 의무는 사용자인 공사업체에게 있을 뿐, 도급인(공사를 맡긴 사람)인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대표자에게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갑질은 있었지만 '불법행위' 입증은 못 했다

법원은 B씨의 행위가 불법 영역에 이르렀는지 엄격하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통상 계약 내용에 없는 공사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위법행위가 되지는 않는다"며, "그 과정에 폭행, 협박, 위력 등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A씨가 B씨의 횡포를 주장했지만,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비전문가인 대표가 붕괴를 '예견'할 수 없었다

설령 B씨가 공사를 강요한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B씨가 굴착면 붕괴라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겠느냐는 문제도 제기됐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수직에 가깝게 땅을 파고, 누수로 지반이 약해진 기술적인 문제였다. 재판부는 "굴착공사나 하수관 매립공사에 비전문가인 피고(B씨)가 붕괴를 예견하면서 공사를 강요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법원은 사고 현장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과 안전 의무는 모두 공사업체에 있으며, 갑질 의혹을 받는 회장 B씨에게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참고] 서울북부지방법원 2024가단145039 판결문 (2025. 8. 12.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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