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사인 한번에 6천만원 날릴 판”... 모델하우스 ‘깜깜이 계약’의 덫
“덜컥 사인 한번에 6천만원 날릴 판”... 모델하우스 ‘깜깜이 계약’의 덫
“계약서 원본도 못 받았는데”... 변호사들 “위약금 과도, 계약 무효 주장 가능”

모델하우스에서 성급하게 미분양 아파트 계약서에 서명한 A씨가 거액의 위약금 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 AI 생성 이미지
“정신없이 이끌려 사인했는데, 이틀 만에 취소하려니 6천만원을 내라네요.”
지인의 소개로 방문한 모델하우스에서 성급하게 계약서에 사인한 A씨는 이틀 만에 거액의 위약금 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A씨는 지난 1월 13일, 공인중개사의 안내로 한 모델하우스를 방문했다.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분양 관계자의 설명을 들은 그는 얼떨결에 1차 계약금 500만원을 입금하고 공급계약서에 서명했다. 인감증명서와 도장 등 나머지 서류는 20일까지 제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한 A씨는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틀 뒤인 15일, 분양사무소를 찾아가 계약 취소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불가’였다.
분양사 측은 계약서 조항을 근거로 “계약을 해지하려면 총 공급대금의 10%인 6000여만원을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고 통보했다. A씨는 계약서 원본조차 받지 못했고, 인감증명서 등 주요 서류도 제출하지 않은 상태였다.
“계약서도 못 받았다면… 본계약 아니다” 법률가들 ‘무효’ 가능성 제기
A씨의 사연에 대해 다수의 법률 전문가는 계약이 완전히 성립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계약 취소’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핵심은 A씨가 체결한 계약의 법적 성격이다.
법무법인대한중앙의 조기현 변호사는 “해당 계약이 가계약인 점을 주장하여 계약을 취소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변호사 조력을 통해 해당 계약이 본계약에 이르지 않았음을 법리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가계약’은 정식 계약 전 부동산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맺는 임시 계약을 뜻한다.
김일권 변호사 역시 “계약서 원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을 철회, 취소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계약의 중요 요소인 계약서 교부와 인감증명서 등 필수 서류 제출이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계약이 최종적으로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6천만원 위약금은 ‘과도한 손해배상’… 법원 “전액 인정 불가”
설령 계약이 성립됐다고 보더라도 6000만원의 위약금은 부당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계약서에 명시된 위약금 조항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규제법)’과 민법의 적용을 받는다.
약관규제법 제8조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시키는 약관 조항을 무효로 보고 있다.
법무법인 금옥의 신현돈 변호사는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하다는 사실을 주장, 입증하여 위약금 감액을 구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계약 체결 불과 이틀 만에 취소 의사를 밝혔고, 이로 인해 분양사가 입은 실질적인 손해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총 공급가의 10%에 달하는 위약금은 법원에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깜깜이 계약’ 대처법… “추가 납입은 절대 금물, 내용증명부터 발송”
전문가들은 A씨가 즉시 취해야 할 행동과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명확히 구분했다.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멈춤’이다.
법무법인 반향의 정찬 변호사는 “추가 계약금이나 서류를 절대 제출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섣불리 추가적인 이행을 할 경우, 계약의 효력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단계는 ‘공식적인 의사 전달’이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반드시 서면으로 취소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향후 법적 분쟁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변호사들은 내용증명 우편을 통해 계약 미성립 또는 해제 의사와 위약금 조항의 부당함을 명확히 통보하라고 권고했다.
클리어 법률사무소의 김동훈 변호사는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진행되는 부동산 분양계약은 대개 그 과정 자체가 사기성이 짙은 경우가 많다”며 초기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대응할 것을 당부했다.
A씨의 사례는 ‘일단 사인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일부 분양 시장의 관행에 경종을 울린다.
법률 전문가들은 A씨가 6000만원의 위약금을 모두 부담할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소송까지 가더라도 계약금 500만원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성급한 계약으로 거액의 손실을 볼 뻔한 A씨의 사례는 부동산 계약 시 신중한 검토와 더불어, 부당한 요구에는 단호히 맞설 법적 권리가 소비자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