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며 맡긴 4천만원, 이별 후 '2300만원 빚'으로
사랑한다며 맡긴 4천만원, 이별 후 '2300만원 빚'으로
결혼 앞둔 옛 연인에게 '내용증명' 받은 여성…전문가들 "스토킹 역공으로 대응해야"

옛 연인과 '커플통장'을 관리하던 여성이 이별 후 스토킹과 2300만원 반환 요구에 시달렸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한때 사랑의 증표였던 통장이 2300만원짜리 빚 독촉장으로 돌아왔다.
다른 여성과 결혼을 앞둔 옛 연인에게서 '내용증명(우체국을 통해 발송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을 받은 한 여성의 사연은, 연인 간 금전 거래가 이별 후 얼마나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내가 모아줄게"…사랑의 증표가 4천만원의 족쇄로
사건은 남자친구 B씨의 달콤한 제안에서 시작됐다. "나는 돈이 있으면 다 써버리니, 네 통장에 넣어두고 싶다."
사랑하는 연인의 말을 믿은 A씨는 자신의 통장을 기꺼이 내줬고, 1년간 B씨가 입금한 약 4천만원을 관리하게 됐다. 이 돈은 두 사람의 데이트 비용, B씨의 보험금 등 '공동 경비'처럼 쓰였다. 당시 개인 가게를 운영하던 A씨에게 B씨는 "필요하면 써도 좋다"고 흔쾌히 허락했고, A씨는 이 말을 믿고 운영자금 1200만원을 사용했다.
"돈은 필요 없어, 다시 만나줘"…이별 통보에 시작된 스토킹
그러나 결혼에 대한 가치관 차이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내 파국을 맞았다. A씨가 "통장에 남은 돈을 돌려주겠다"고 하자, B씨는 "돈은 안 줘도 되니 다시 만나달라"며 매달렸다.
그의 애원은 A씨가 새 직장 동료와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오해하면서부터 끔찍한 집착으로 변질됐다. B씨는 A씨가 혼자 사는 원룸의 도어락을 누르고 무단 침입을 시도하는가 하면, "네가 내 돈 다 썼지", "4천만원 안 내놓으면 가족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성 문자를 밤낮으로 퍼부었다.
1700만원 갚았지만…결혼 앞둔 그의 '2300만원 청구서'
공포 속에서도 A씨는 '함께 쓴 돈이니 절반은 갚는 게 도리'라는 생각에 매달 돈을 보내 1700만원을 상환했다. 하지만 B씨의 결혼 소식과 함께 날아온 것은 '커플통장(공금) 각자 기여도에 따른 반환금 청구'라는 제목의 내용증명이었다. 남은 2300만원을 즉시 갚으라는 최후통첩이었다.
법률가들 "방어와 역공, 두 갈래로 대응해야"
법률 전문가들은 A씨가 '방어'와 '역공' 두 단계로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단계 방어의 핵심은 B씨가 준 돈이 '빌려준 돈(대여금)'이 아닌 '증여 또는 공동사용 자금'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진훈 변호사(법무법인 쉴드)는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입금했고 공동 사용에 합의했으며, 일부 사용을 허락한 정황은 증여의 성격을 뒷받침한다"고 분석했다. 통장 거래 내역과 당시 대화 기록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2단계는 B씨의 스토킹과 협박을 문제 삼는 '역공'이다. 심준섭 변호사(법무법인 심의)는 "내용증명에 대해 자금의 성격과 분할상환 합의 사실을 명시해 반박하고, 스토킹 행위에 대한 형사고소를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B씨의 불법 행위를 통해 그의 금전 요구가 순수한 채권 회수가 아닌 부당한 압박임을 법원에 알려야 한다는 전략이다.
'경제적 통제', 새로운 데이트 폭력의 경고등
이 사건은 연인 간의 금전 거래가 신뢰의 상징에서 어떻게 통제와 협박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랑하니까 괜찮다'는 안일한 믿음 아래 오간 돈은 관계가 끝나는 순간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연애 문제를 넘어, 경제적 통제를 수반한 새로운 형태의 '데이트 폭력'에 해당한다.
관계의 시작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안전한 이별'이다. 설령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금전 거래에는 명확한 증거를 남기고, 부당한 요구와 위협에는 단호히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것만이 스스로를 지키는 현실적인 방법임을 이 사건은 경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