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영상 유포하겠다" 8시간 감금·협박…5개 혐의 유죄에도 집행유예, 왜?
"성관계 영상 유포하겠다" 8시간 감금·협박…5개 혐의 유죄에도 집행유예, 왜?
흉기 들고 전 여친 감금해 협박

헤어진 여자친구 집에 침입해 흉기로 협박하고 8시간 넘게 감금한 남성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셔터스톡
새벽에 헤어진 여자친구 집에 침입해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흉기까지 동원해 8시간 넘게 감금한 남성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5개에 달하는 범죄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음에도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지 않은 배경에는, 모든 고통을 겪은 피해자의 용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원지방법원 제15형사부(재판장 정윤섭)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촬영물등이용강요), 특수협박, 특수감금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지난 8월 14일 밝혔다.
성관계 영상으로 시작된 8시간의 공포
A씨의 범행은 헤어진 연인 B씨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작됐다. 2023년 4월 4일 새벽 2시경, A씨는 미리 알고 있던 비밀번호를 누르고 B씨의 집 공동현관으로 들어갔다. 옥상에 있는 B씨의 집 문을 두드린 그는 "집에 들여보낼 생각이 없다"는 B씨의 거부에도 문을 강제로 열고 침입했다.
집 안에 들어선 A씨는 "왜 연락을 안 받냐, 남자 생겼냐"고 소리치며 접시를 깨뜨리는 등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공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씨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보관 중이던 B씨의 성관계 영상과 나체 사진 수십 장을 보여주며 본격적인 협박을 시작했다. 그는 "원래 말 안 하고 유포하려 했는데 기회를 주러 왔다"며 영상과 사진을 골라 연락처 목록에 공유할 듯한 행동을 취했다.
A씨의 범행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부엌에서 칼을 들고 와 자신의 목에 겨누며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고 죽어버리겠다"고 위협했고, B씨가 집 밖으로 도망가려 하자 넘어뜨리고 폭행했다. 그는 식탁에 칼을 올려놓은 채 "나가려면 나를 찌르고 가라"고 말하며 B씨를 약 8시간 동안 감금했다.
강간은 '무죄', 스토킹은 '공소기각'…왜?
검찰은 A씨가 B씨를 강간한 혐의도 적용해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당일 경찰 조사에서 B씨는 강압에 의한 성관계가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법정에서는 진술을 바꿨다.
B씨는 법정에서 "피고인을 달래주려다 자연스럽게 성관계에 이르게 됐다"며 "당시 저도 마음이 확실히 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또, 경찰 조사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경찰관의 유도 질문에 "네, 네"라고 답하다 보니 진술이 왜곡됐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이 번복된 경위가 비교적 자연스럽고, 최초 112 신고 내용에도 강간 피해 사실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A씨가 B씨에게 91회에 걸쳐 연락하고 주거지에 접근한 스토킹 혐의는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였는데, 재판 도중 B씨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끔찍한 범죄에도 집행유예…결정적 이유는 피해자의 용서
재판부는 A씨의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흉기로 인한 두려움뿐 아니라, 촬영물 유포 가능성으로 인해 극도의 불안감과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며 A씨의 범행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럼에도 법원이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한 이유는 명확했다.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피고인이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성관계 영상 등을 실제로 유포한 정황은 없는 점 ▲범행에 사용된 휴대전화가 압수돼 추가 유포 위험이 사라진 점 등이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됐다.
[참고] 수원지방법원 2024고합816 판결문 (2025. 8. 14.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