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증 없이 '1억원' 대여금 소송 이겼다, 그 배경에는…
차용증 없이 '1억원' 대여금 소송 이겼다, 그 배경에는…
유흥업소 종사자 간 1억원대 대여금반환 청구 소송
차용증 등 핵심 증거 없어⋯업소 관계자들 통해 사건 파악
재판부 "업계 관행에 맞게 업무 이뤄졌던 것으로 보여⋯1억여원 지급하라"

민사 소송은 원고가 주장하는 바를 직접 입증해야 한다. 이에 A씨는 동료 B씨에게 "1억원의 받을 돈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는데, 문제는 바로 차용증과 같은 증거가 없었다. /연합뉴스·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한때 유흥업소에서 동료로 일했던 A씨와 B씨가 법정에서 맞붙은 건 1억원 이상의 거액이 걸린 '대여금반환 청구 소송'에서였다.
사실 이번 소송은 A씨에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민사 소송의 특성상 원고(A씨)가 입증 책임을 지기 때문에, "B씨에게 받을 돈이 있다"는 것을 법원에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이 경우 핵심 증거라 할 수 있는 '차용증'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만 보자면 A씨의 패소가 유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A씨의 승소였다. 법원이 "B씨가 A씨에게 돈을 줘야 한다"고 판결한 것. '차용증'도 없이 승리한 대여금반환 청구 소송, 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까.
지난 2019년, A씨는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유흥업소에서 유흥접객원 여성(접객원)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식품위생법 시행령에 따르면, 유흥주점에선 접객원을 고용해 고객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춤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제21조·제22조).
A씨가 했던 구체적인 업무 방식은 이랬다. ①A씨가 마담 B씨로부터 "접객원을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접객원을 보냈다. ②접객원에게 근무 대가로 주는 봉사료는 A씨가 사비로 먼저 지급했다. ③이후 B씨에게 통상 1주일마다 이 돈(대치금)과 수수료 등을 정산받았다.
그러다 A씨가 어느 시점부터 약 4개월 동안 대치금을 정산받지 못했다(③). 그 금액만 총 1억 1447만원. 이후 A씨는 B씨에게 수차례 정산을 요구했지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식의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지난해 6월, A씨는 B씨를 상대로 '대여금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B씨가 지급해야 하는 봉사료 등을 A씨가 대신 선지급했으니, 이는 B씨가 갚아야 할 대여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B씨는 돌연 "A씨에게 돈을 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단 그는 A씨가 주장하는 업무 방식(①~③)을 부인했다.
해당 방식은 보통 '한 팀'으로 일할 경우 사용하는데, 업소에 따로 스카우트 된 자신은 A씨와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원래는 업소 사장이 A씨에게 돈을 지급해야 하고, 자신은 '호의로' 몇 번 직접 돈을 보낸 것뿐이라고 했다.
둘의 입장은 확연히 엇갈렸다. 더욱이 A씨와 B씨 각각의 주장을 확인할 차용증이나 장부 등도 없는 상황이었다. 업계 특성상 구두로 계약이 이뤄지고, 현금 거래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재판부는 두 사람과 함께 일했던 업계 관계자들을 법정에 불렀다. 그러면서 매출 분배 등 업계 관행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그러자 A씨에게 유리하게 재판이 흘러갔다. 우선 이들과 함께 일했던 접객원 등 2명은 A씨와 B씨가 한 팀으로 일했다는 증언을 했다. 무엇보다 A씨가 주장하는 업무 방식이 '유흥업소 관행'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해당 재판에서는 다른 업소 관계자 약 5명은 진술서를 통해 "나도 A씨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업소의) 모든 부장들이 하고 있는 시스템"이라고 밝혔다. 약 20년간 이 업계에서 일했다는 한 증인은 "(마담 B씨가 주장대로 일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A씨와 B씨 두 사람 모두와 함께 일한 한 직원이 "B씨가 '외상 술값 들어오면 해결해줄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고도 말하면서, A씨의 주장엔 더욱 힘이 실렸다.

하지만, B씨 측에서는 별다른 증거나 증인을 세우지 않았다. 결국 지난 5월,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3단독 조해근 부장판사는 "B씨는 A씨에게 직접 1억 1447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일반적으로 유흥업소에선 부장과 마담이 함께 접객원 관리 등을 하는 점 △여기에 업주가 별도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 △마담이 고객에게 봉사료 등을 받은 뒤 술값은 업주에게, 봉사료는 부장에게 전달하는 것이 업계 관행으로 정착된 점 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A씨를 대리한 LUX 법률사무소의 김정조 변호사는 "대여금반환 청구 소송에서 차용증만큼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 쉽지 않은데, 이번 소송은 차용증이 없는 사건이라 힘들 것을 예상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재판정에 업계 관계자들을 출석시켜 판사를 설득시키고, 증인으로 출석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술서를 받아 제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보통의 대여금반환 청구 소송과 달리 예외적으로 증언과 증인진술서만을 가지고 승소한 사건이라 그 의미가 컸다"고 밝혔다.
한편 마담 B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김 변호사는 이번 소송과 별개로 B씨를 사기죄 등으로 형사 고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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