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칼 수준' 도검인데...의사의 진단서 발급 거부, 1년째 소송전
'식칼 수준' 도검인데...의사의 진단서 발급 거부, 1년째 소송전
'우울증 악화 우려' 진단서 거부...의료법 '정당한 사유' 공방

우울증 환자가 도검 소지 허가용 진단서 발급을 거부당해 행정소송 중이다. / AI 생성 이미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도검 소지가 우울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진단서 발급을 거부당한 환자가 1년 넘게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폭력 전과나 자해 이력도 없는 환자를 상대로 한 의사의 거부가 의료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며, 의사의 전문적 재량권과 환자의 권리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일본도인 줄 알았다"...엇갈린 첫 단추, 1년간의 소송전
사건의 발단은 A씨가 도검 소지 허가를 받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으면서 시작됐다. 허가에 필요한 진단서 발급을 요청했지만, 담당 의사는 이를 거부했다.
처음 거부 사유는 A씨가 '일본도'를 소유하려 한다는 오해에서 비롯됐다. A씨는 의무기록에 '일본도 소유'라고 기재된 것을 확인하고, 실제로는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대형 식칼과 유사한 수준"의 물건이라고 정정했다. 의사 역시 이 사실을 인정하고 기록을 수정했다.
하지만 의사의 거부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이번에는 "약 17cm 정도의 도검을 소지하는 것이 정신적 긴장을 유발하여 우울증 악화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A씨에게는 폭력 전과나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친 기록이 전혀 없었다. 범죄 악용 가능성이 아닌, 순수한 '정신건강 악화 가능성'만을 근거로 한 거부였다.
결국 A씨는 이 문제로 도검 소지 허가 관련 행정처분을 받았고, 행정심판에서 패소한 뒤 현재 행정소송까지 진행하며 1년이 넘는 시간과 비용을 쏟아내고 있다.
의사의 거부, 어디까지가 '정당한 사유'인가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의료법 제17조가 규정한 진단서 발급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의사의 판단이 포함되는지 여부다. 법조 전문가들의 의견은 팽팽하게 맞선다.
먼저 의사의 재량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이동규 변호사(법무법인 대한중앙)는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는 환자의 상태가 특정 행위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의사가 전문적 판단을 한 경우, 이를 법원이 쉽게 위법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단순 불편함이 아니라 의학적 위험성 판단이라면 정당한 사유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홍원표 변호사(법률사무소 무제) 역시 "의사는 환자에게 유리한 방향의 의견을 강제받을 수 없다"며 우울증 악화 가능성을 의학적 판단으로 내세운 이상 정당한 사유로 평가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의사의 판단이 재량권을 넘어섰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고준용 변호사(법무법인 도모)는 "최초 면담 시 '일본도'로 오해했던 사실은 판단 기반에 오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며 "객관적 근거에 기초한 것인지 다툴 여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한정미 변호사(법무법인 세담)도 "아무런 의학적 근거 없이 도검 소지가 우울증 악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진단한 것이라면, 이는 통상적인 의료수준에 반하는 진단과오가 인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민·형사 소송은 '첩첩산중'… 현실적 해법은?
A씨는 손해배상이나 업무방해 등 다른 법적 조치도 고려하고 있지만, 변호사들은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민사 손해배상은 진단서 거부 행위의 위법성과 그로 인한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A씨가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 강민기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율)는 "행정심판 패소라는 결과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법원이 인과관계를 쉽게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형사책임 역시 "진단서 발급 거부만으로 업무방해나 직무상 과실이 성립하기는 어렵다"는 게 이동규 변호사의 설명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신청도 대안이 되기 어렵다. 고준용 변호사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주로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를 다룬다"며 "진단서 발급 거부 행위는 의료사고로 인정되기 어렵고, 이곳에서 의사에게 진단서 발급을 강제할 수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현실적인 해법으로 다수의 변호사들은 현재 진행 중인 행정소송에 집중하면서, 다른 병원에서 객관적인 소견을 확보할 것을 조언했다.
조민경 변호사(법무법인 도아)는 "동일 전문과 다른 의료기관에서 재진단을 받아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실효적인 방법"이라며 "행정소송에서는 의사의 판단이 과도하거나 불합리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다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