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몰라서 녹음했는데…" 술자리 여성과 하룻밤, '녹음 파일'이 불러온 소송 위기
"혹시 몰라서 녹음했는데…" 술자리 여성과 하룻밤, '녹음 파일'이 불러온 소송 위기
전문가들 "유포 안 됐다면 위자료 크지 않아…상대방 무단 촬영은 협상 카드"

여성과의 잠자리 전에 혹시 몰라 녹음을 했다가 민사소송 위기에 처한 A씨.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셔터스톡
'성관계 전 녹음' 형사처벌은 NO, 민사소송은 YES? 법적 쟁점 분석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녹음을 켰습니다." 술자리에서 만난 여성과 성관계 전 대화를 녹음한 남성 A씨가 민사소송 위기에 처했다.
A씨는 최근 한 온라인 법률 상담 플랫폼에 자신의 사연을 올렸다. 술집에서 알게 된 여성과 함께 집으로 왔고, 성관계를 갖기 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휴대전화로 녹음을 시작했다. 하지만 관계 후 A씨가 씻는 사이, 여성이 녹음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은 A씨의 휴대전화 녹음 화면을 자신의 폰으로 촬영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형사적으로 처벌이 불가하다"고 고지하며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여성은 "민사소송을 걸겠다"는 말을 남겼고, A씨는 불안감에 잠 못 이루고 있다.
"내 대화 내가 녹음했는데, 이게 죄가 되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A씨의 녹음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여러 변호사들은 A씨의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을 금지한다. 하지만 A씨처럼 대화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가 그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법무법인 리버티의 김지진 변호사는 "단순 녹음 자체에 대한 형사적 절차는 진행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경찰이 현장에서 형사처벌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도 바로 이 법리 때문이다.
형사처벌 피했지만…'사생활 침해' 위자료는 얼마?
형사 책임을 피했다고 해서 모든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여성은 A씨의 녹음 행위가 자신의 사생활과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민사상 손해배상(위자료)을 청구할 수 있다.
법무법인 선승의 안영림 변호사는 "대화 당사자 일방이 동의 없이 녹음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음성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성관계라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동의 없이 녹음한 만큼, 법원이 A씨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위자료 액수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법원은 위자료를 산정할 때 녹음의 목적, 내용, 유포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법무법인 에스엘 이성준 변호사는 "녹음 파일을 제3자에게 유포하지 않았다는 점은 위자료 액수를 산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감경 사유"라며 "유사 사안에서 통상 수백만 원 수준에서 위자료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A씨가 '혹시 모를 상황 대비'라는 방어적 목적으로 녹음했고, 이를 외부에 유출하지 않은 점이 재판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상대방이 나 몰래 찍은 사진, 법정 증거 될까?
그렇다면 여성이 A씨의 동의 없이 촬영한 '녹음 중인 화면' 사진은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을까?
형사소송에서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의 능력을 엄격하게 제한하지만, 민사소송에서는 비교적 폭넓게 인정되는 경향이 있다.
법무법인 한별 이주한 변호사는 "민사재판에서는 증거능력이 형사재판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아 (여성이 촬영한 사진이) 증거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사진 촬영 행위 자체가 A씨의 동의 없는 정보 수집이라는 점을 역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김지진 변호사는 "상대방이 동의 없이 촬영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측면에서 법적 압박 등 협상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최종 전망: '방어 목적' 인정받는다면
종합하면 A씨는 형사처벌은 피했지만, 민사소송에서 수백만 원대 위자료를 지급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소송이 실제 제기된다면, A씨는 녹음이 악의적인 목적이 아닌 자기방어 차원이었고, 녹음 파일이 어디에도 유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녹음 버튼 하나가 법정 다툼의 불씨가 된 지금, 그의 선택은 법의 심판대 위에서 '방어권'과 '사생활 침해'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