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가려주고, 피해자 정보는 공개하는 이상한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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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가려주고, 피해자 정보는 공개하는 이상한 판결문

2019. 11. 18 16:18 작성
조하나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one@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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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 성폭행 사건' 왜 피해 여성 나이만 공개했나요?" 기사 속 의문을 풀어드립니다

영구보존 되는 판결문에 피해자의 내밀한 개인 정보가 무분별하게 담겨야 하는지, 피해자의 인권을 지켜줄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이 지난 12일 무죄 판결을 내린 '감자탕 성폭행 사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릇에 감자탕 고기를 덜어준 호의를 '암묵적 성관계 동의'라고 해석한 재판이 있었다는 로톡뉴스 최초 보도 후 많은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 비판했다.


이 기사에는 피고인 남성 '박모씨'의 나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피해 여성의 나이는 공개됐다. 이 때문에 "나이를 밝히려면 두 사람 모두 공개해야지, 피해자만 나이를 공개한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로톡뉴스가 남성 나이를 공개할 수 없었던 건 판결문 자체에 이 정보가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판결문 속 피고인의 나이는 모두 감췄지만, 피해 여성의 나이는 그대로 공개했다. "가해자 인권은 보호하면서 피해자의 인권은 지켜주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가해자 정보는 ***처리해 비공개⋯ 피해자 나이는 23살 정확히 명시

로톡뉴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감자탕 고기를 접시에 넣어준 것이 성관계를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내용의 기사(▶관련기사 [단독] 접시에 고기 덜어준 '호의'를 성관계 '동의'라고 해석한 법원)가 올라온 뒤 "왜 가해자 나이는 빠졌고 피해자의 나이만 공개됐느냐"는 질문이 댓글로 달렸다.


페이스북에 올린 해당 기사에는 왜 피해 여성의 나이만 공개됐는지를 묻는 질문이 달렸다. /로톡뉴스 페이스북 캡처


이 사건 판결문에는 피해 여성 나이만 드러나 있었다. 재확인하기 위해 판결문을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했지만, 남성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감춰져 있었다.


이는 법원이 판결문 공개 규칙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 법률은 판결문에 기재된 정보 중 그대로 공개되면 사생활 침해가 예상되는 정보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와 같은 경우다. 피고인 남성 주민등록번호가 블라인드 처리된 건 이 때문이다.


반면 피해자의 나이 정보는 판결문 속 사건 경과를 설명하는 문장 안에 포함되면서 블라인드 되지 못했다. 주민등록번호 형태로 들어간 나이 정보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증거 능력 없는데... 판결문에 실린 피해자 '불법촬영' 사진

재판부가 피해자 인권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사건은 최근에도 여럿 있었다. 의정부지법 '레깅스 사진' 판결문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 기사를 최초 보도한 한겨레는 '최소 4개 사건 판결문에서 40장이 넘는 불법 촬영물이 판결문에 실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로톡뉴스 취재 결과 문제가 된 사진의 숫자는 훨씬 많았다. 의정부지법 관할에서 작성된 판결문 7개에서 모두 153장의 불법 촬영물이 확인됐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이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밀집장소에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남성은 어떤 여성 사진을 찍은 뒤 20분 후 같은 장소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연달아 찍었다. 이 사진도 모두 판결문에 그대로 실렸다.


재판에 넘겨진 사건 중에는 경찰이 증거물을 불법적으로 압수하면서 무죄가 나온 사건도 있는데, 재판부는 이 무죄 부분에 해당하는 불법 촬영물까지 모두 판결문에 실었다. 즉 불법촬영물 내용과 상관없이 당연히 무죄인 부분과 관련해서도 판결문에 사진을 실은 것이다. 사건 판단에 관련 없는 사진들을 수록한 셈이다.


판결문 '영구보존'⋯ 2차 피해는 누가 책임지나

판결문은 불가침의 문서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명백한 오자가 있지 않은 한 판결문은 일자일획도 함부로 고치지 못한다. 법관들이 "판결문에 오타가 있더라도 쉽게 고치지 못하니 조심 또 조심해서 작성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과장이 아니다.


판결문에 피해자의 내밀한 개인정보, 특히 수치심이 들 수 있는 불법 촬영물 사진이 실려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해당 이미지는 사건과 관련 없는 사진임. /게티이미지코리아


판결문 자체도 영구히 보존된다. 판결문은 관련 법률에 따라 각급 법원에서 30년간 보관한 후 법원 보존문서관리소로 이관해 영구보존하고 있다.


이런 판결문에 피해자의 내밀한 정보가 무분별하게 담겨야 하는지 의문이다. 특히 수치심이 들 수 있는 불법 촬영물 사진이 실리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더 공감하고 그들의 인권을 좀 더 지켜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며 "최소한 가해자를 보호하는 수준 이상으로 피해자를 지켜줘야 국민들이 납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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