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인 줄 알았는데” 유부남의 거짓말, 형사처벌은 ‘위헌’ 민사 위자료는 얼마?
“총각인 줄 알았는데” 유부남의 거짓말, 형사처벌은 ‘위헌’ 민사 위자료는 얼마?
‘결혼 D-160’ 프사 올린 그 남자, 한 달 전 나와는
데이트 앱 사기 대처법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최근 그의 프로필에 웨딩사진이 올라왔습니다. 불과 한 달 전 저와 데이트를 즐겼던 그 남자였습니다.”
소개팅 앱에서 만난 남성이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한 여성의 절규다. 직업부터 결혼 여부까지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 남자.
배신감에 잠 못 이루던 여성은 법의 문을 두드렸다. 그의 거짓말을 법적으로 처벌하고, 망가진 마음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여의도 증권맨입니다” 달콤한 속삭임의 배신
모든 것은 한 달 전, 한 소개팅 앱에서 시작됐다. 자신을 여의도 B증권사에 다닌다고 소개한 남성 A씨와 매칭된 여성. “전 ㅇㅇㅇ입니다”, “여의도 출근 완료” 등 그의 카카오톡 메시지는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졌고, 데이트와 스킨십, 성관계로 이어졌다.
의심의 씨앗은 A씨의 SNS 프로필 사진 한 장에서 싹텄다.
턱시도를 입은 A씨 옆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활짝 웃고 있었다. 프로필 상태 메시지에는 ‘결혼 D-160’이라는 카운트다운까지 적혀 있었다. 충격에 빠진 여성은 웨딩 스튜디오에 문의했고, “해당 콘셉트는 2년 전 이후 촬영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미 오래전 결혼했거나, 최소한 결혼을 준비 중이라는 명백한 정황이었다. 과거 그가 ‘가족사진’이라며 보여줬던 사진 속 인물들도 그의 아내와 장모일 가능성이 커졌다.
그의 거짓말, 형사처벌은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형사 처벌은 사실상 어렵다. 과거에는 혼인을 빙자해 성관계를 맺으면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할 수 있었지만, 2009년 헌법재판소가 “국가가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에 개입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해당 조항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폭행이나 협박이 동반되지 않은 이상, 거짓말로 성관계를 유도했더라도 강간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입을 모아 형사 고소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백창협 변호사(법무법인 오른)는 “형사는 어려워 보인다”고 잘라 말했고, 김시은 변호사(변호사김시은법률사무소) 역시 “기망에 의한 성관계로 보이나, 폭행·협박에 의한 간음이 아닌 이상 형사 고소는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금전적 이득을 취한 정황이 없어 사기죄 적용도 불가능하다.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민사소송이 현실적 대안
형사의 문은 좁지만, 민사소송의 길은 열려 있다. 핵심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따른 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것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상대방을 선택하고 성관계를 맺을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뜻한다.
A씨가 결혼 사실이라는 중대한 정보를 속인 행위는 여성의 이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준환 변호사(법률사무소 필승)는 “남성이 결혼 사실을 숨기고 교제를 하여 성관계를 했다면, 자신을 속인 남성에게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일권 변호사(변호사김일권법률사무소) 역시 “정식 교제가 아닌 ‘썸’ 관계였더라도 상대방의 거짓말에 속아 성관계가 진행됐다면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법원 판결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천지방법원은 2022년, 혼인 경력과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교제한 남성에게 “원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며 1,5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역시 2023년, 기혼 사실을 속이고 성관계를 맺은 남성에게 1,000만 원의 위자료를 인정했다.
홧김에 회사에 알렸다간 ‘명예훼손’ 역공 우려
억울한 마음에 A씨의 직장이나 집에 사실을 알리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절대 피해야 할 행동이다. 한장헌 변호사(윈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는 “회사나 자택에 직접 공문을 보내면 명예훼손으로 역공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을 알리는 행위라도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는 상태에 놓이면 ‘공연성’이 인정돼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안전하고 합법적인 방법은 변호사를 통해 상대방에게 직접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이다. 내용증명은 법적 효력은 없지만, 상대방의 불법행위를 지적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공식적인 의사표시로, 향후 소송에서 유리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여성이 확보한 소개팅 앱 대화, 데이트 사진, 웨딩사진 캡처 등은 민사소송에서 A씨의 기망 행위를 입증할 강력한 증거가 된다.
숙박업소 출입 기록 등 추가 증거는 소송을 제기한 뒤 법원을 통해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해 확보할 수 있다.
형사 처벌이라는 ‘정의 구현’은 멀어졌지만, 그의 거짓말로 무너진 신뢰와 시간은 법정에서 금전적 배상으로나마 일부 회복될 길을 찾고 있다.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상대를 기만한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법원은 판결로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