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연인의 외도, 몸에 남은 HPV 낙인…법적 책임 물을 수 있나?
6년 연인의 외도, 몸에 남은 HPV 낙인…법적 책임 물을 수 있나?
배신과 감염의 이중고, 변호사들 “소송 가능, 관건은 인과관계 입증”

외도한 연인에게 HPV 같은 성병이 옮았다면 민·형사 소송이 가능하다. 그러나 감염의 원인이 전 연인이라는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소송의 핵심이다. / AI 생성 이미지
6년간 사랑했던 연인의 배신, 그리고 5개월 뒤 몸에서 발견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배신감에 더해 건강까지 위협받는 이중고 속에서, 과연 전 연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다수의 법률 전문가들은 민사 소송은 물론 형사 고소까지 검토할 수 있지만, 결국 ‘전 연인 때문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증명하는 것이 소송의 승패를 가를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송은 기본, 형사고소 카드까지…그러나 전제는 ‘입증’
6년간 교제했던 연인의 외도로 이별하고, 5개월 뒤 건강검진에서 HPV 39형 바이러스가 검출된 여성. 감염 확인 전까지 다른 사람과의 성적 접촉은 전무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변호사들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법무법인 태림의 김정현 변호사는 “일단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밝혔고, 뉴로이어 법률사무소의 이도연 변호사 역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형사 처벌 가능성을 언급하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공명 김준성 변호사는 성병 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성관계를 가진 경우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며 “그럴 경우 상해죄 적용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고의가 없었더라도 “과실로 인해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에 적용되는 죄명이 과실치상죄”라며 과실치상죄 적용 가능성도 함께 제시했다.
가장 높은 벽, ‘인과관계’… “네 탓이라는 증거 있는가?”
법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희망도 잠시, 모든 변호사는 ‘인과관계 입증’이라는 거대한 벽을 지적한다. HPV 감염이 오롯이 전 연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는 “HPV는 감염 시점과 감염원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단순히 “외도 후 발견됐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하진규 변호사 역시 “법원은 100% 확실한 입증보다는 개연성 있는 증명으로도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 부분이 소송의 핵심 쟁점이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법원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교제 기간 중 정기검진에서 HPV가 없었다는 과거 의료기록 ▲상대방의 외도를 입증하는 증거(메시지, 사진 등) ▲감염 시점의 의학적 소견서 ▲교제 종료 후 다른 이성과의 접촉이 없었음을 증명할 정황 증거 등을 촘촘하게 엮어 ‘상당한 개연성’을 입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신의 대가, 위자료는 얼마? “인과관계 인정된다면…”
고된 입증 과정을 거쳐 승소한다면 어느 정도의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변호사들은 위자료 액수가 감염 질환의 종류, 치료 기간, 후유증, 상대방의 고의성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이유진 법률사무소 나인의 이유진 변호사는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수백만 원에서 1천만 원~2천만 원 사이가 일반적입니다”라고 밝혔다.
법무법인 유안 조선규 변호사는 핵심 전제를 달아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했다. 그는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위자료 1,000만 원~3,000만 원 수준이 현실적인 인정 범위로 예상됩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판례에서도 성병 감염에 대한 위자료 지급 판결을 찾아볼 수 있다. 한 판결에서는 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 사실을 숨기고 성관계를 한 상대방에게 치료비와 별도로 위자료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동부지방법원 2022. 8. 19. 선고 2021가단138911 판결).
소송만이 능사는 아니다…합의부터 형사고소까지 ‘현실 전략’
변호사들은 시간과 비용, 감정 소모가 큰 소송에 앞서 다른 방법들을 먼저 고려해 볼 것을 권한다. 많은 변호사들이 소송 전 내용증명을 보내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고 합의를 시도하는 전략을 추천했다.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하진규 변호사는 “상대방이 이에 응한다면 합의로 마무리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유리합니다”라고 조언했다.
한편, 형사 고소를 압박 카드로 활용하는 전략도 있다. 법무법인 공명 김준성 변호사는 “상해죄, 과실치상죄 등으로 상대방을 고소하시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이를 통해 상대방의 합의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피해 회복을 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핵심은 섣부른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법적 증거를 기반으로 냉정하게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법무법인 한강 김전수 변호사는 “감염 경로 입증이 불충분하면 청구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어, 감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증거 구조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