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에서 '무혐의' 처분 나왔다고 포기하지 말자, 민사에선 이길 수도 있으니까
형사에서 '무혐의' 처분 나왔다고 포기하지 말자, 민사에선 이길 수도 있으니까
'고의성'을 중점적으로 처벌하는 형법⋯민법은 '고의 말고도 과실'까지 처벌

투자사기를 당한 A씨. 형사고소에서 무혐의 처리된 사기꾼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면 이기길 수 있을까?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는 참고 이미지. /게티이미지코리아
A씨에게 지난해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B씨에게 투자사기를 당해 그동안 모은 전 재산을 날렸다. 거기에 최근에는 더 황당한 소식을 들었다. 다른 피해자가 B씨를 형사 고소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는 것이었다. "돈을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했던 한 가닥 희망이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그 '단체 카톡방'이 모든 일에 원흉이었다. 한 푼이라도 더 불려보겠다고 투자 관련 글을 보다 그 채팅방에 참여한 게 화근이었다. B씨는 자신의 투자 성공담을 늘어놓으며 돈을 불려주겠다고 유혹했다. 화려한 수익률에 깜빡 넘어가고만 A씨는 지난해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6500만 원을 건네주었다.
돈이 불어나고 있는 통장 잔고 사진을 보여주며 A씨를 안심시켰던 B씨. 그러나 B씨에게 돈을 돌려받기로 한 7월, 그는 없던 사람처럼 사라졌다. B씨를 만난 단톡방에는 "나도 당했다"며 A씨와 같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나왔다. 사기꾼 B씨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이미 다른 피해자의 신고로 조사를 받던 B씨. A씨는 그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들어보니 B씨는 검찰에서도 당당했다. "통장 잔고는 과장하긴 했다"면서도 "투자에 실패에 돈을 불리지 못해 나서지 못했을 뿐 잠적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선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으로 사건을 덮었다.
사기꾼 B씨의 재판 결과만 기다리던 A씨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러면서 "형사 고소에서 불기소가 내려졌는데 민사 소송을 하면 이길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서 변호사를 찾아왔다.
변호사들은 A씨도 서둘러 B씨를 형사고소 하라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오라클(성남) 박현민 변호사는 "B씨를 사기죄로 고소하라"면서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했어도) 피해자가 다수라는 사실은 '상대방이 돈을 받을 시점에 편취(騙取) 의도가 있었다'는 입증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JLK 법률사무소 김일권 변호사도 "다른 피해자가 먼저 형사고소를 했어도, B씨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이 나왔어도 괜찮다"며 "사기죄는 미세한 부분에서 유죄와 무죄가 갈리니 형사고소를 진행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무작정 사기죄로 고소하기보다는 불기소 이유를 먼저 알아보라고 조언한 변호사도 있었다.
법무법인 한송 류상훈 변호사는 "A씨가 형사고소를 하더라도 내용이 같다면 또다시 불기소처분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전 고소인들로부터 불기소 결정 이유서를 받아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나우 법률사무소 장준환 변호사도 "어떤 사유로 불기소 의견이 나온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위 의견에 동의했다.
변호사들은 형사고소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이 나온 사건이라 하더라도, 민사소송에서는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즉, B씨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산성 박현우 변호사는 "형사고소에서 불기소처분이 되더라도 민사소송 진행은 가능하다"며 "투자 사실과 원금보장 약정 등의 사실을 증거로 입증하여야 하는데, 증거가 있다면 민사소송에서 패소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좋은날 법률사무소의 김영삼 변호사는 "형사소송에서 사기죄란 돈을 투자받을 당시에 피고소인(B씨)에게 기망(欺罔)의 의사가 있었는지만을 따진다"면서 "B씨에게 구체적인 투자계획이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기망 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민사는 다르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민사소송에서는 투자를 받은 이후 수탁자인 B씨의 태도를 더 면밀하게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투자 위임취지에 맞게, 신의성실에 따라 투자하지 않는 경우엔 손해배상책임을 묻게 된다"고 말했다.
즉, 민사 소송에서는 B씨가 어떻게 투자금을 운영하였는지를 법원이 더 자세히 살핀다는 것이다. 이때 B씨가 성실히 투자금을 운영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인정되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런데 형사 소송 과정 중에서는 '위법'하지 않다고 했는데, 민사소송에서는 왜 '위법'하다고 볼 수 있는 걸까?
법무법인 신효의 오세정 변호사는 "B씨가 형사고소에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데도, 민사소송으로 가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불법행위 처벌에 대한 형법과 민법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외적으로 '과실범'도 처벌하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형법은 '고의적 범행'만을 처벌한다"고 했다. 이어 오 변호사는 "그러나 민법은 '고의' 뿐 아니라 부주의에 의한 '과실'도 함께 처벌하기 때문에 형사에서 무혐의인 B씨가 민사에서는 유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