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판 사라진 탑골공원, '질서 회복'인가 '노인 간접차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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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판 사라진 탑골공원, '질서 회복'인가 '노인 간접차별'인가

2025. 08. 21 11:00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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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보호' 명분 아래 사라진 어르신들의 쉼터

법으로 본 '간접차별' 쟁점

지난 7월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어르신들 모습. /연합뉴스

"장기판 위 '딱' 소리도, 훈수 두던 목소리도 사라졌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의 풍경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공원 담벼락을 따라 길게 늘어섰던 장기판과 바둑판이 자취를 감추면서다. 종로구청과 경찰은 '문화유산 보호'와 '공공질서 확립'을 이유로 공원 내외부의 모든 오락 행위를 금지했다. 거리는 깨끗해졌지만, 수십 년간 이곳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던 어르신들은 갈 곳을 잃었다.


정숙한 공원을 위한 정당한 행정 조치일까, 아니면 특정 세대를 겨냥한 차별일까. '문화유산 보호'라는 대의명분 아래,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또 다른 가치가 침해된 것은 아닌지 법의 잣대로 따져봤다.


정부 "국가유산, 법으로 지켜야 한다"

종로구청의 조치는 강력한 법적 근거를 갖는다. 탑골공원은 단순한 공원이 아닌, 국가유산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민족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은 국가의 헌법상 의무"라고 못 박은 바 있다.


현행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은 공원 내 관람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를 금지하며, 이를 어길 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즉, 장기나 바둑으로 인한 소음, 통행 불편, 음주 문제 등을 '관람 분위기를 저해하는 행위'로 보고 조치를 취한 것이다.


"사실상 노인 배제하는 간접차별" 비판도

하지만 이번 조치가 사실상 노인들을 공원에서 배제하는 '간접차별'에 해당한다는 비판도 있다.


법 조항 자체는 '모든 사람'의 오락을 금지할 뿐 나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조치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집단이 수십 년간 공원에서 장기를 두며 여가를 보내온 '어르신'들이라면, 이는 실질적으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나이 등을 이유로 특정인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한다. 탑골공원에서 장기를 두는 것이 문화유산의 본질을 훼손할 만큼 심각한 문제인지, 그리고 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꼭 전면 금지여야 했나

문화유산을 보호하려는 목적은 정당하다. 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 '장기판 전면 철거'라는 방법이 유일한 해법이었을까? 법원은 행정 조치가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이뤄졌는지를 따지는 '비례의 원칙'을 중시한다.


이번 조치는 어르신들의 유일한 여가 활동을 빼앗으면서도, 이들을 위한 대체 공간이나 보완 조치는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례의 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


공원 내 특정 구역을 '오락 허용 구역'으로 지정하거나, 인근에 대체 공간을 마련하는 등 문화유산 보호와 어르신들의 여가권을 조화시킬 방법은 없었을까. 탑골공원은 정숙을 되찾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또 다른 가치를 잃은 것은 아닌지, 법의 잣대는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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