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 당일 불허 결정⋯'주먹구구식' 법무부 행정을 '무효 처리'로 꾸짖은 법원
신청 당일 불허 결정⋯'주먹구구식' 법무부 행정을 '무효 처리'로 꾸짖은 법원

법원에서 좀처럼 인정하는 일이 없는 '무효 확인'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가 법무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낸 난민 신청자의 손을 들어줬다. /셔터스톡
"(법무부의 처분은) 하자가 중대할 뿐만 아니라 명백하다."
지난 28일 서울행정법원 재판부가 법무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낸 난민 신청자의 손을 들어주며 한 말이다.
법원은 난민 신청자의 사유를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체류를 불허한 법무부의 결정이 '무효'라고 봤다. '무효'란 어떤 법률행위가 성립한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 법률상 효력이 없는 것으로 보는 개념이다.
행정 기관이 문제(하자)가 있는 처분을 내렸을 때, 법원은 판결을 통해 취소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그 처분의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한 경우에는 법원이 '무효 확인' 판결을 하게 된다. 잘못의 정도가 너무 심각해서 애초부터 효력이 없었다는 선언인 셈이라, 행정소송에서 '무효 확인' 판결이 나오는 일은 좀처럼 없다.
"모국으로 돌아가면 죽습니다." 중동에서 온 A씨는 절박한 마음으로 다시 대한민국의 문을 두드렸다.
A씨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지난 1993년. 당시 A씨는 난민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2009년 모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A씨는 그곳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이슬람교를 믿는 그의 나라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구금까지 당한 A씨.
그 후 어렵게 한국 땅을 다시 밟은 A씨는 "모국으로 돌아가면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라며 다시 한번 난민 신청을 했다. 난민 심사의 높은 턱을 넘기도 전에 A씨는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하는 별도의 문제가 있었다.
A씨가 대한민국에 머물 수 있는 체류자격을 얻어야 했던 것. 난민 심사에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신청이었다. 난민인권센터 자료에 따르면 1차 난민 심사 과정은 평균 7개월이 걸렸다.
이에 A씨는 법무부에 체류자격 변경을 신청했다. 그런데 법무부의 반응은 놀라웠다. 절박한 심정으로 답변을 기다린 A씨에게 기본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고 신청 당일 불허 처분을 통보한 것이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꼼짝없이 사지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A씨는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0단독 안금선 판사는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불허 처분을 한 건 중대하고도 명백한 하자"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고, A씨에게 당일 불허 처분을 내린 법무부 직원에게 '직무유기'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확인 결과, '직무유기죄' 적용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직무유기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 "직무유기란 추상적인 의무를 태만한 경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직장의 무단이탈⋅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의 기능을 저하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시킬 가능성이 있는 경우"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단순히 업무를 불성실하게 한 것만으로 직무유기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지난 8월 국민의 공분을 샀던 뺑소니 음주운전 사고가 있다. 피해자 한 명은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이 사건에 대해 당시 담당 경찰관은 CCTV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변호사들은 같은 이유로 직무유기죄를 묻기 어려울 것이라 입을 모았다.
다만, A씨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국가배상을 받을 여지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배상법 제2조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판례를 살펴보면 "그 행정처분의 담당공무원이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하여 볼 때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하여 그 행정처분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될 정도에 이른 경우에 국가배상법 제2조 소정의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을 충족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종합했을 때, 난민 신청을 한 A씨에 대해 기초조사도 안 했던 담당 공무원은 일반적인 공무원의 표준과는 거리가 있으며, 따라서 객관적으로 주의의무를 기울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해당 공무원의 과실로 피해를 입은 A씨에게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