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한국 맞나요? 외국어 간판, 불법인데도 판치는 이유
여기가 한국 맞나요? 외국어 간판, 불법인데도 판치는 이유
법 위반인 건 맞지만, '특별한 사유' 해당하면 예외
법에 처벌조항 없어 강제성 없고⋯관리 감독할 인력도 부족

우리 주변에서 이제 '외국어 간판'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나 중국어 등 외국어만 적힌 간판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외국어로만 쓰인 간판들은 모두 '불법'이다. 해당 이미지는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참고용 이미지. /연합뉴스·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우리 주변에서 이제 '외국어 간판'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나 중국어 등 외국어만 적힌 간판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외국어로만 쓰인 간판들은 모두 '불법'이다. 우리 법에는 간판 표기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광고물 등의 △종류·모양·크기·색깔 △표시 또는 설치 방법 △기간 등에 대해 같은 법 시행령에 따른 허가나 신고를 받도록 돼 있다(제3조).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에서는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해야 하며,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함께 적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2조 제2항).
시행령에서 알 수 있듯이 광고물의 문자는 한글 표기가 원칙이며 외국어를 쓸 경우 한글과 병기(竝記·함께 나란히 적음)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2004년 서울중앙지법은 국민은행과 KT가 옥외 간판에 한글을 병기하지 않고 영문으로만 표기한 점에 대해 '위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즉,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외국어만으로 표기된 간판은 불법이다. 이처럼 명확한 법 규정이 있는데도 외국어로만 이뤄진 간판이 주변에 즐비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시행령에서 규정한 '특별한 사유'에 해당하면 해당 규정을 피할 수 있다. 한국옥외광고센터가 지난 2016년 발행한 옥외광고법령 해설집에 따르면, 시행령에서 말하는 특별한 사유를 '상표법에 의거해 특허청에 등록된 상표(한국 또는 외국문자가 포함된 내용)를 그대로 표시하는 경우'라고 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대다수가 위 해석을 따르고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의 옥외광고물 허가(신고)기준에 따르면, '상표법 및 디자인 보호법' 등에 의하여 등록된 상표·디자인물은 한글과 병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또한, 시행령 제5조에 따라 3층 이하에 설치하거나 간판 면적이 5m²(약 1.5평) 이하인 경우 신고나 허가 대상에 속하지 않아 규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해당 법에 처벌 조항이 없어 강제성이 없다는 점도 외국어 간판이 즐비한 이유 중 하나다. 옥외광고물법과 같은 법 시행령을 보면 광고물 표시에 대한 기준은 있지만 그에 따른 처벌 규정이 없다.
대신 관할 시장이나 구청장 등은 기준에서 벗어난 광고물을 제거하거나 허가를 취소하는 등 그 밖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옥외광고물법 제10조 제1항).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긴 한다(제20조). 하지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일선 공무원들을 취재해본 결과, 강제성 있는 명령이나 과태료 처분을 거의 내리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의 A구청에 따르면, "일일이 단속해 과태료나 강제이행과 같은 행정처분을 하게 되면 오히려 민원이 거세지는 경우가 많다"며 "기간을 주고 자진해서 바꾸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모자란 인력도 한계로 지적된다. 단속해서 간판이 불법인지를 먼저 조사해야 하는데 이것부터도 어려운 상황이다. 관리해야 할 광고물 등의 수에 비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옥외광고물을 담당하는 인력은 보통 1~2명 정도다. 부족한 인력이 관할구역 옥외광고물 전체를 담당하고 있다 보니, 사실상 간판에 대해서만 집중 단속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서울의 B구청 관계자는 짚었다.
주위에 넘쳐나는 외국어 간판. 몇몇을 제외하고 불법은 맞지만, 유명무실한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