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로 낳은 아이 숨기고 결혼한 아내… 사기 결혼일까?
성폭력 피해로 낳은 아이 숨기고 결혼한 아내… 사기 결혼일까?
아내의 낡은 상자에서 출산 기록 발견한 남편, 사기 결혼 주장
김나희 변호사 “성폭력 피해 출산은 고지 의무 없는 내밀한 사생활”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우연히 발견한 아내의 낡은 상자 속에서 과거 다른 아이를 출산해 입양 보낸 기록이 나왔다면 남편은 사기 결혼을 이유로 혼인을 취소할 수 있을까.
오늘(20일) 전파를 탄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서는 과거 성폭력 피해로 아이를 출산한 사실을 숨기고 결혼한 아내와 이를 알게 된 남편의 사연이 다뤄졌다.
올해 43세인 남편은 직장 동료의 소개로 시립도서관 사서인 아내를 만나 1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평온했던 결혼 생활은 1년쯤 지났을 무렵, 이사를 위해 아내의 짐을 정리하던 중 오래된 상자 하나를 발견하면서 파국을 맞았다.
상자 안에는 갓난아기의 사진과 아내의 이름이 어머니란에 적힌 출생신고 관련 서류가 들어있었다.
남편의 추궁에 아내는 하얗게 질려 눈물을 터트리며 믿기 힘든 과거를 고백했다. 스무 살 무렵 성폭력 피해를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했고, 결국 아이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그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억이라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며 울먹였다.
남편은 아내의 끔찍한 고통은 납득하면서도, 인생을 함께할 배우자에게 이를 숨긴 것은 신뢰를 무너뜨린 행위라며 혼인 취소와 재산분할, 위자료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남편은 적어도 결혼 전에는 솔직히 털어놨어야 한다며, 그랬다면 결혼을 한 번 더 신중하게 고민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법조계 “범죄 피해로 인한 출산, 법적 고지 의무 없어”
법무법인 신세계로의 김나희 변호사는 단순히 과거를 숨긴 것만으로는 사기로 인한 혼인 취소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민법 제816조 제3호는 사기 또는 강박으로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 혼인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김나희 변호사는 “혼인의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적극적으로 속였는지, 그리고 그 사실을 미리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는지가 함께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법원 역시 이와 유사한 사건에서 아내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2016년 2월 18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로 인한 임신과 출산은 개인의 매우 내밀한 사생활 영역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을 상대방에게 반드시 알려야 할 법적·사회적 고지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혼인 취소되더라도 재산분할·위자료 청구 문은 열려 있어
만약 다른 사유로 혼인이 취소된다면 재산분할과 위자료 청구는 어떻게 될까.
김나희 변호사는 “혼인 취소의 경우에도 재산 분할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며, 실제로 일정 기간 부부로 생활하며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이 있다면 이혼과 마찬가지로 재산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혼인 취소 사건은 실무상 혼인 기간이 비교적 짧아 공동 재산이 많지 않다면 재산 분할이 크게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위자료 청구 역시 가능하다. 배우자가 중요한 사실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해 결혼에 이르렀다면 상대방에게 정신적 손해를 입힌 불법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나희 변호사는 “과거의 출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위자료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실을 숨긴 경위와 적극적으로 속였다고 볼 수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