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에 사라진 우리 집 가는 길…'공사 중단' 소송, 이기는 전략은?
재개발에 사라진 우리 집 가는 길…'공사 중단' 소송, 이기는 전략은?
'전면 금지'는 99% 기각, 변호사들이 제시한 현실적 승소 공식

부산의 한 정비사업으로 유일한 통행로가 막힌 주민이 법적 대응에 나섰다. / AI 생성 이미지
"어느 날 갑자기 유일한 통행로가 사라졌습니다." 부산의 한 정비사업으로 집으로 가는 길이 막힌 주민이 결국 법적 대응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공사 전면 중단' 요구는 사실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승소 확률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대체도로 확보 전 공사 제한' 등 구체적인 조건을 내건 예비 청구와 '부분 수임'을 통한 비용 절감이 핵심으로 꼽힌다.
길이 막혔다, 공사 중단 외엔 방법이 없나
부산의 한 정비사업 구역 인근에 거주하는 A씨는 매일 이용하던 유일한 생활 도로가 공사 부지로 편입되면서 하루아침에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조합 측이 대체도로를 마련했지만, 폭이 좁고 위험해 응급차량 접근조차 어렵다고 판단한 A씨는 결국 '공사금지' 민사소송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A씨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조합이 사업 인가 과정에서 자신의 주택 접근권이나 응급상황 발생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면, 인가 전 조합 내부 자료에는 A씨 주택을 포함한 대체 도로와 공사 차량 동선 문제가 명시되어 있었다. 문제를 인지하고도 묵살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법조계는 A씨가 원하는 '공사 전면 중단'이 인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법무법인 베테랑의 윤영석 변호사는 "법원은 정비사업 전체를 중단시키는 '공사금지 청구'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라며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수많은 조합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A씨가 이길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승패 가르는 '플랜 B', 예비 청구 설계도
다수의 변호사는 '예비적 청구'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는지가 소송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예비적 청구란, 주된 청구가 기각될 경우를 대비해 내놓는 '제2의 요구안'이다.
가장 현실적인 카드는 법원이 즉각 집행할 수 있는 '조건부 금지'를 단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는 "대체통행로 확보 전까지의 공사차량 반복 운행 제한을 가장 앞에 두고, 그다음으로 특정 구간에서의 정차와 대기, 후진, 하역 등 통행방해행위의 금지를 배치하며, 응급차량 접근로 확보를 위한 동선 조정을 함께 구하시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상세한 순서를 제시했다.
이는 재판부가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해야 설득력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일조권 침해 문제는 성격이 달라 별도로 다뤄야 한다. 오지영 변호사는 "일조권 침해는 침해의 성질이 다르므로 별개의 청구로 분리하여 일조 감정을 통해 수인한도 초과 여부를 입증하시기 바란다"고 조언하며, 공사 중단보다는 손해배상 청구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임을 시사했다.
변호사 비용, '선택적 선임'으로 허리띠 졸라매기
소송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역시 A씨의 발목을 잡는 문제다. 모든 관련 사건을 변호사에게 맡기기엔 착수금과 성공보수, 감정 비용이 부담스럽다. 이에 대해 변호사들은 '선택적 선임' 또는 '부분 수임'이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법무법인 심의 심준섭 변호사는 "핵심 금지소송 1건은 변호사에게 전면 위임하여 청구취지 설계와 예비청구 배열을 맡기고, 나머지 사건은 서면 자문이나 기술검토 자료 활용만으로 진행하는 방식이 비용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사건 간 논리적 모순 방지를 위해 전체 전략 가이드라인을 공유받는 조건으로 계약해야 한다"는 중요한 단서를 달았다.
특히 이 사건처럼 기술적 입증이 중요한 경우, 역할 분담은 더욱 효과적이다. 모두로 법률사무소 한대섭 변호사는 "공사 차량 진출입구 회전 궤적 검토, 응급 차량 접근성 분석, 일조량 시뮬레이션 같은 공학적 입증 자료는 변호사가 직접 산출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이 부분은 귀하께서 전문 교통기술사나 토목 감정 업체에 별도 용역을 의뢰하여 객관적인 기술검토서를 확보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투명하다"고 설명했다. 법리 구성은 변호사가, 기술 검토는 전문가가 맡아 시너지를 내라는 것이다.
'검토자료 없음' vs '인가 전 자료', 결정적 증거의 재구성
A씨가 확보한 '접근성 검토자료 없음'이라는 정보공개 회신은 소송의 향방을 가를 핵심 증거로 꼽힌다. 조합이 인접 가구의 안전과 통행권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부실 행정'의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도모의 고준용 변호사는 "정보공개 결과와 인가 전 자료의 불일치는 원고에게 유리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서류상의 모순점을 객관적 데이터와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현장 방문을 통해 확보한 구체적인 위험 요소를 기술적인 회전궤적 분석 자료와 결합하면 통행권 침해를 효과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 역시 조합이 문제를 알고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며 "두 자료의 대비를 핵심 논거로 삼으시기 바란다"고 힘을 실었다.
조합의 부실을 지적함과 동시에 기술적 데이터로 실제 위험을 증명하는 것. 이것이 바로 법적 주장과 기술적 증거, 비용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략적 소송'의 핵심이자 A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