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4억 뛰자 계약 파기? '기습 중도금'에 막힌 퇴로
집값 4억 뛰자 계약 파기? '기습 중도금'에 막힌 퇴로
"해제냐, 증액이냐" 매도인 요구에 매수인은 수 시간 만에 송금으로 응수

아파트값이 폭등하자 집주인이 계약 해제나 증액을 요구했으나, 매수인이 중도금 지급일 전에 돈을 기습 입금하며 법적 분쟁이 시작됐다. / AI 생성 이미지
아파트값이 4억 원이나 폭등하자 계약을 해지하고 싶었던 집주인. 하지만 "계약을 해제하든지 돈을 더 달라"는 요구를 전하자마자, 매수인이 아직 기한이 남은 중도금을 '기습 입금'하면서 법적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중도금이 지급되면 계약 해제가 불가능하다는 법 조항을 이용한 매수인의 발 빠른 대응에, 매도인은 배액 배상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소송 위기에 내몰렸다. 과연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해제 말 끝나자…계좌에 꽂힌 5천만 원"
사건은 지난 5월 중순, A씨가 자신의 아파트를 15억 원에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시작됐다. 계약금 1억 5천만 원을 받고, 중도금 5,000만 원(6월 30일)과 잔금(8월 15일) 날짜를 정했다.
하지만 계약 후 한 달도 안 돼 주변 시세가 19억 원까지 치솟자 A씨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결국 A씨는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매수인에게 "시세가 너무 올랐으니 계약을 해제하든지, 아니면 매매대금을 1억 5천만 원 더 올려달라"는 최후통첩에 가까운 요구를 전달했다.
그러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A씨의 요구를 들은 매수인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아직 지급일이 한참 남은 중도금 5,000만 원을 A씨 계좌로 기습적으로 입금해 버린 것이다.
매수인은 "이미 중도금이 지급돼 이행에 착수했으니 계약 해제는 불가능하다"며 예정대로 소유권을 넘기라고 통보했다.
'이행 착수'냐 '해제권 방해'냐…법리 다툼의 핵심
이번 사태의 핵심은 매수인의 '기습 입금'이 법적으로 유효한 '이행의 착수'로 인정되느냐에 달려 있다.
민법 제565조는 당사자 일방이 이행에 착수하기 전까지 매도인은 계약금의 두 배를 돌려주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통상 중도금 지급은 이행 착수의 대표적 사례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이규희 변호사는 "민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매수인은 날짜가 남아 있더라도 미리 중도금을 지급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계약서 특약사항에 지정된 날짜 전에는 중도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등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유효합니다"라고 원칙을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법무법인 도모 김상훈 변호사는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이행기 전의 이행 착수도 유효하다고 보나,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고 배액배상을 준비하는 등 '해제권 행사 단계'에 진입했다면, 매수인의 기습적인 입금은 효력이 없다고 판단합니다"라며, 매도인이 먼저 해제 의사를 밝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승패 가를 '증거'…"단순 협상 아닌 확정적 해제 통보였나"
결국 A씨가 재판에서 이기려면, 매수인이 돈을 입금하기 전에 '명확하고 확정적인' 해제 의사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A씨가 던진 "해제하든지, 아니면 증액해 달라"는 선택적 요구가 법정에서 '단순 협상 시도'가 아닌 '확정적 해제 통보'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김상훈 변호사는 "구두로 증액을 요구한 것이 단순한 협상인지, 거절 시 해제하겠다는 확정적 의사표시인지에 따라 법적 평가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시 통화 녹취나 문자 내역 등 입증 가능한 증거를 조속히 확보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만약 증거가 부족한 상태로 버티다간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법무법인 우선 조상우 변호사는 "만약 이러한 통지 선후관계에 대한 명확한 입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잔금 수령을 거부하신다면, 매수인 측에서 처분금지가처분 및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 경우 방어가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소송이냐 합의냐…변호인들의 현실적 조언
대다수 변호사는 현재 상황이 A씨에게 불리하다고 진단하면서도, 소송보다는 합의를 통한 실리 추구를 조언했다. 소송으로 갔을 때 승소를 장담하기 어렵고, 패소하면 소유권 이전은 물론 추가적인 손해배상 책임까지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규희 변호사는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매수인에게 법적으로 중도금이 유효하게 들어온 것은 인정하나, 시세 급등으로 인해 매도인의 상실감이 가혹할 정도이니 도의적인 차원에서 잔금 때 몇천만 원이라도 좋으니 일부 금액을 보태달라'고 정중히 합의를 시도해 보시는 것이 최선으로 판단됩니다."
4억 원의 차익 앞에서 계약을 지켜야 하는 A씨의 선택지에 법률 전문가들은 '소송 강행'보다는 '현실적 합의'에 무게를 싣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