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8억 돌려받을 줄 알았는데"… 세입자 울린 '그 특약'의 비밀
[단독] "8억 돌려받을 줄 알았는데"… 세입자 울린 '그 특약'의 비밀
권리금 8억, 임대인이 직접 쓰면 반환
세입자 못 구한 임차인, 보증금도 밀린 월세로 반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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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계약서에 분명히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한테 가게를 넘기지 못하면, 임대인이 권리금 8억 원을 돌려주겠다고요."
8억 원이라는 거액의 권리금을 걸고 계약한 세입자 A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빈손으로 나가게 된 상황에서, 그는 '특약사항' 하나를 믿고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법원은 냉정했다. 일반인의 상식과 법관의 해석은 달랐다.
대구지방법원 제13민사부(재판장 권순엽)는 지난 1월 7일, 임차인 A사가 임대인 B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권리금 8억 원 반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믿었던 보증금 3억 원마저 절반 넘게 깎여, 고작 1억 4천만 원만 손에 쥐게 됐다. 도대체 어떤 문구가 문제였을까.
11억짜리 계약의 전말: "집주인 믿고 도장 찍었는데"
사건은 2018년, 대구의 한 건물에서 시작됐다. 식품 사업을 하는 원고(임차인)는 피고(임대인)의 건물에 들어가면서 보증금 3억 원에 월세 2,000만 원짜리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여기에 더해 '바닥 권리금' 명목으로 8억 원을 임대인에게 따로 지급했다.
11억 원이 묶이는 큰 계약인 만큼, 양측은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바로 계약서 제12조 특약이다.
[논란의 특약 제12조] "임대인이 받은 권리금 8억 원에 대하여, 임차인이 다른 사람에게 양도나 직접 매도를 하지 아니하고 임대인이 매매 또는 임대 기타 직접 경영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사용 시에는 권리금 전액을 임차인에게 반환키로 한다."
2024년 4월, 계약이 만료되자 원고는 가게를 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져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다. 원고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못 넘겼으니, 특약대로 집주인이 8억 원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팩트 체크': 문구 해석이 승패 갈랐다
이 사건의 핵심은 난해한 특약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였다. 일반인인 원고는 이를 "내가 권리금 회수를 못 하고 나가면, 집주인이 책임지고 돌려준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문장을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1. '재사용'의 의미
집주인이 '가로챌 때'만 준다 재판부는 이 특약을 "임대인이 가게를 뺏어서 직접 이득을 볼 때만 돈을 돌려준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권리금 반환 의무가 생기려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조건 ① (세입자):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넘기지 못하고 나갈 것.
조건 ② (집주인): 그 빈 가게를 집주인이 직접 운영하거나, 집주인이 직접 팔아넘길 것.
재판부는 "원고가 스스로 영업을 그만두고 나갔을 뿐, 임대인이 그 자리에 직접 가게를 차리거나 건물을 매각하려 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즉, 집주인이 가게를 차지해 이득을 취한 상황이 아니므로 돈을 돌려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2. 권리금은 '빌려준 돈'이 아니다
원고는 8억 원이 사실상 나갈 때 돌려받기로 한 '보증금'이나 '대여금'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계약서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계약서에는 그저 '권리금(시설비 포함)'이라고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법원은 "권리금은 원래 다음 세입자에게 받는 돈이지, 집주인에게 달라고 할 수 없는 돈"이라는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했다. 집주인이 방해 공작을 펴서 권리금 회수를 못 하게 한 경우가 아니라면, 단순히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주인이 물어낼 돈은 아니라는 뜻이다.
"월세도 밀렸다"… 보증금 반환도 '반토막'
설상가상으로 원고는 보증금 3억 원도 온전히 챙기지 못했다. 계약 막바지에 장사가 어려워지자 월세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원은 보증금 정산 내역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밀린 월세 공제: 2023년 8월분과 10월 이후부터 계약 종료일까지 밀린 월세 약 1억 5,500만 원을 깠다.
소방 시설 수리비 공제: 소방 점검에서 지적받은 사항을 원고가 고치지 않아, 집주인이 대신 쓴 수리비 320만 원도 원고가 물어내게 됐다.
결국 법원은 집주인에게 "보증금 3억 원에서 밀린 돈을 뺀 1억 4,180만 원만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원고가 처음에 요구했던 11억 원(보증금+권리금) 중 9억 5천만 원 이상이 허공으로 사라진 셈이다.
이번 판결은 "특약이 있으니 안전하다"는 믿음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법조계 관계자는 "권리금 반환 특약을 맺을 때는 '어떤 경우에 돌려주는지'를 육하원칙에 따라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며 "애매한 문구는 결국 임대인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