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지 마" 음성 내밀자 경찰 왈 "안 헤어졌으니 처벌 어렵다"…이게 맞나요?
"찍지 마" 음성 내밀자 경찰 왈 "안 헤어졌으니 처벌 어렵다"…이게 맞나요?
불법촬영·협박 피해자, 고소 취하 종용에 거짓말탐지기 압박까지…변호사들 "명백한 2차 가해"

전 연인에게 불법 촬영을 당해 '찍지 마'라는 음성 증거와 함께 신고한 피해자에게 수사관이 즉시 헤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 취하를 종용해 논란이다. / AI 생성 이미지
전 연인에게 불법 촬영과 협박을 당해 경찰에 신고한 A씨. 촬영 당시 “찍지 마”라고 명확히 거부한 음성 파일까지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돌아온 담당 수사관의 말은 뜻밖이었다.
수사관은 “즉시 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이 어렵다”며 고소 취하를 종용했다. 심지어 “정 억울하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하라”며 A씨를 압박했다.
가해자의 협박이 두려워 곧바로 관계를 끊지 못했던 A씨는 수사 과정에서 극심한 2차 피해를 겪고 있다. 수사관의 말처럼, 신고가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 촬영 범죄는 성립하지 않는 걸까?
"찍지 마" 명백한 증거에도…"고소 취하하라"는 수사관
A씨는 5개월 전 전 연인을 카메라등이용촬영죄(카촬)와 협박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 당시 법원으로부터 피의자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냈고, 경찰로부터 스마트워치까지 지급받았다. 그럼에도 피의자가 접근하는 일이 있어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조사 과정에서 A씨는 촬영 당시 “찍지 마”, “뭐 해”라고 명확히 거부한 음성이 담긴 영상과, 몰래 찍은 구도의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담당 수사관은 “처벌이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수사관은 그 이유로 “즉시 신고하거나 헤어지지 않아서”라고 설명하며 A씨에게 “고소 취하할 거면 해라”라고 말했다.
A씨는 가해자의 협박(“뒤집어엎겠다”, “다 죽자”)이 두려워 바로 헤어지지 못했다고 진술했지만, 수사관은 이를 무시하고 거짓말 탐지기 조사까지 압박했다. 심지어 가해자는 SNS에 “내가 질 거 같지ㅋㅋ”라는 조롱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변호사들 "신고 시점은 처벌 요건 아냐…수사관 주장은 법리 위반"
변호사들은 수사관의 발언이 법리적으로 근거가 없으며, 부적절한 수사 태도라고 지적했다.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핵심은 ‘촬영 당시’ 피해자의 의사에 반했는지 여부이며, 신고 시점이나 이별 여부는 범죄 성립 요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이디종합법률사무소 전종득 변호사는 “상대방이 연인이라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피해자 의사에 반해 촬영하면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죄가 성립할 수 있다”며 “즉시 신고하지 않았거나 바로 헤어지지 않았다는 사정은 법정 구성요건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유한) 텍스트 박종태 변호사는 판례상 연인 관계였더라도 동의 없는 촬영 및 협박은 범죄라고 선을 그었다. 박 변호사는 “‘즉시 헤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성립을 부정하고 고소 취하를 유도하는 것은 명백한 부적절 수사”라고 비판했다.
모두로 법률사무소 한대섭 변호사 역시 “대법원 판례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교제 폭력이나 성범죄의 경우 가해자의 협박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해자가 즉각적인 분리나 신고를 하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며 수사관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짚었다.
'묵시적 동의' 가능성?…"명시적 거부 음성 있다면 얘기 달라져"
물론 수사기관이 사후 정황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법무법인 이엘 민경철 변호사는 “촬영 이후 즉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거나 삭제 요구나 항의를 하지 않은 경우”, “관계가 악화되거나 다른 갈등이 발생한 이후 고소한 경우” 등은 촬영 당시 의사에 반했다는 주장과 경험칙상 충돌하는 사정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관이 거짓말탐지기를 거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A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A씨처럼 촬영 당시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힌 증거가 있다면 상황은 다르다는 게 다수 변호사의 견해다. 법률사무소 열다 박다솜 변호사는 “영상에 실제로 ‘찍지 마’라는 음성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실제 유사 판례에서도 연인관계에서 성관계 도중 피해자가 ‘찍지 마’라고 말하고 얼굴을 가리는 등 모습이 확인된 경우 유죄가 인정되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한강 허은석 변호사도 “촬영 당시 ‘찍지 마’, ‘뭐 해’라고 명시적으로 거부한 음성이 영상에 남아 있다면 촬영 의사에 반하였음을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수사관 교체 신청하고, 조롱 글도 추가 증거로 제출해야"
변호사들은 A씨가 현재 상황에서 취해야 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부당한 수사를 진행하는 수사관을 교체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이규희 변호사는 관할 경찰서 청문감사인권실을 방문하거나 기피 신청을 접수하여 수사관 변경을 강력히 요구하라고 말했다. 또한 수사관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는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률사무소 길 길기범 변호사는 수사관이 “고소 취하할 거면 해라”라고 말한 것은 직무유기이자 피해자 보호 의무 위반이라며 수사관 기피 신청서 제출을 권했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 강요에 응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길기범 변호사는 “거짓말 탐지기는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거부하더라도 법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가해자의 SNS 조롱 글과 접근금지 위반 사실 등은 추가 증거로 제출해 엄벌을 탄원해야 한다. 법무법인 KB 김태안 변호사는 가해자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조롱 글과 접근금지 위반 내역을 빠짐없이 캡처해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이는 재범 위험성을 입증해 가해자를 구속 수사로 전환할 수 있는 핵심 자료”라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