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제로 주고받은 돈⋯사이 안 좋아지니 이제 와서 ‘사기’라는데
결혼 전제로 주고받은 돈⋯사이 안 좋아지니 이제 와서 ‘사기’라는데
특별히 기망한게 없어 사기죄 성립 안된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남녀의 교제는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 됩니다. 다행히 이들이 결혼에 성공한다면 문제가 없는데, 어떤 이유에서건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일이 복잡해지게 됩니다. /셔터스톡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남녀의 교제는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 됩니다. 그러니 서로 마음에 들고 믿음이 간다면 함께 장래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게 되겠죠. 이때 경제적인 문제들이 주요 관심사 중 하나로 떠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죠. 어떤 경우에는 결혼 후의 생활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남녀 간에 돈이 오가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들이 결혼에 성공한다면 문제가 없는데, 어떤 이유에서건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일이 복잡해지게 됩니다.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면서 돈을 준 쪽에서는 그 돈을 돌려받기 원하는데, 돈을 가져간 쪽이 되돌려줄 수 있는 여건이 안 될 경우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기’ 얘기가 나오고, 가져간 돈이 ‘대여금’이냐 ‘증여’냐를 두고 법정다툼까지 생기게 됩니다.
A씨(여)가 결혼을 전제로 B씨를 만나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순조롭게 이어져 갑니다.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에 대한 믿음도 더해 갔습니다. 만난 지 한 달쯤 지날 무렵 B씨는 직장을 쉬고 있던 A씨에게 “주식투자로 생활비라도 마련하고 재테크도 해 보자”며 3800만 원을 보내주었습니다. B씨는 이후로도 세 차례에 걸쳐 2900만 원을 더 A씨의 주식거래 통장에 넣어주었습니다. 이때 B씨는 A씨에게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라 당신 돈입니다. 잘 투자해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B씨는 또 A씨에게 신용카드를 줘 생활비를 일부 충당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들은 신혼여행 명분으로 함께 여행을 갔고, 여기서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행길에서 이들은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투었습니다. 헤어지자는 얘기까지 나오게 됐지만, 티격태격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주식투자는 손해를 봤고, B씨는 A씨가 쓴 자신의 신용카드 대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후 B씨는 “결혼을 전제로 모든 것을 주었다”며 A씨에게 여러 차례 결혼을 요구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자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그녀를 사기죄로 고소했습니다. B씨는 “A씨와의 여행 첫날 잠자리 기억은 나지 않고, 지금까지 A씨의 손도 한번 못 잡아 봤다”며 “A씨가 이 핑계 저 핑계로 결혼을 회피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A씨는 “당초 B씨가 결혼하자며 돈을 주었고, 또 설령 하는 일이 잘못되어도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해놓고서 이제는 내가 요구해서 돈을 준 것이고, 나 때문에 경제적 손해를 봤다며 사기로 고소했다”고 주장합니다. A씨는 최근 바닥을 친 주식을 모두 처분해 B씨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은 카톡과 문자 메시지로 남아있으며, A씨의 채무를 일부 변제한다는 내용과 B씨 소유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충당한다는 내용은 대화 중에 나온 것이어서 정황만 카톡에 남아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A씨는 현재 사기죄로 고소된 상태입니다. 두 사람 사이의 돈 거래내용뿐 아니라, 돈을 가져다 쓴 A씨가 결혼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을 B씨가 문제 삼은 듯합니다.
사기죄는 다른 사람을 ‘기망(欺罔·남을 속여 넘김)’하여 자신이나 제3자가 재물의 취하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는 죄(형법 제347조)입니다. 여기에서 핵심이 ‘기망’ 여부인데요, 기망이란 허위 사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변호사들은 A씨 상담사례를 두고 "사기죄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견해입니다. 법무법인 이데아의 김태환 변호사는 “A씨가 특별히 기망한 게 없어 사기죄는 성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서울종합 법무법인 박준성 변호사는 “사기죄 성립은 어려워 보이지만 사기죄로 고소되어 피의자 신분이므로 피의자 조사 과정은 거쳐야 하며, 첫 조사 때의 진술이 매우 중요한 만큼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수사에 대응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합니다.
연인 사이였던 남녀가 헤어지면서 한쪽이 상대에게 준 돈을 "반환하라"는 민사소송이 적잖이 발생합니다. 이성 교제 시 상대방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겨서, 또는 장래를 약속한 사이임을 생각해서 돈을 빌려주거나 증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후일 헤어지게 되면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준 생활비나 용돈을 되돌려 달라고 법정 다툼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남녀 사이의 금전거래 사건은 그것이 대여금인지 증여인지 돈의 성격을 규명하고 이를 증명하는 게 핵심입니다. 연인 사이의 금전거래는 차용증이나 반환각서 같은 서류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특성을 갖습니다. 이 때문에 나중에 대여금 반환 분쟁이 많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증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판례상 호의에 의해 이루어진 남녀 사이의 증여는 되돌려 받기 어렵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법상 금전의 증여는 돈을 주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무상으로 준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돈을 받는 사람도 이를 승낙함으로써 성립됩니다. 증여는 무상이고, 한쪽에서 주지만 받는 쪽에서는 반대급부를 하지 않는 ‘편무계약’이어야 합니다. 증여는 특별한 형식이 없이 구두계약이나 묵시적계약도 계약으로 인정되는 불요식계약입니다.
이 상담사례에서 A씨가 B씨를 특별히 기망한 게 없으니 사기죄에 걸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변호사들이 말했지만, 일이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A씨가 모두 합해 67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B씨로부터 받아 주식투자를 한 뒤 다 돌려주지 못했기에, 이에 대한 민사소송이 예견되는 상황입니다.
법원이 이 돈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증여로 인정된다면 A씨가 더 이상 신경 쓸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대여금으로 판명된다면 나머지 돈을 갚아야 할 의무가 남게 되는 만큼, 그 돈이 증여금인 것을 증명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남겨두고 있는 것입니다.
법무법인 이데아의 김태환 변호사는 “금전 문제는 민사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이 돈이 대여인지 아니면 증여인지가 문제될 것”이라며 “증여라면 반환할 의무가 없는데도 A씨가 B씨의 요구에 따라 일부 보내준 기록이 있어, A씨에게 불리한 정황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김 변호사는 “이를 뒤집을 만한 증거들이 필요하며,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문자내용 등은 잘 보관하고, 이를 통해 증여임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한 법률사무소의 이제한 변호사는 “결혼을 전제로 본인이 자진해서 돈을 주었다면 증여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경찰 조사 때 전후 사정을 잘 설명한다면 문제는 잘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최진혁 법률사무소 최진혁 변호사는 “A씨 계좌로 돈을 송금받았고 일부 반환한 내역도 있어, 기존에 송금받은 돈이 대여금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며 “A씨가 반환한 나머지 차액에 대한 반환 책임이 인정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합니다. 최 변호사는 “B씨가 돈을 보내게 된 경위와 B씨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된 경위와 관련해 단순히 증여인지 아니면 대여 인지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이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