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 신분증이 은행원 실적 도구였다"
"분실 신분증이 은행원 실적 도구였다"
금감원도 '위반' 인정…피해자, 은행 상대 '나홀로 소송'

분실 후 재발급된 신분증으로 은행 직원이 차명계좌와 금융상품을 무단 개설했다. /AI 생성 이미지
분실 후 재발급까지 받은 신분증으로 버젓이 차명계좌가 개설되고 금융상품 5개에 무단 가입됐다. 심지어 은행 직원은 개인 소득증명서까지 몰래 발급받았다.
금융감독원이 위법을 인정한 가운데, 피해자는 거대 은행을 상대로 한 '나홀로 소송'에 나섰다.
분실 신분증의 기묘한 부활…내 명의로 6개 상품 가입
사건의 발단은 분실된 신분증 한 장이었다. A씨는 신분증을 분실한 뒤 즉시 재발급받았지만,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A씨의 옛 신분증을 손에 쥔 OO은행 직원은 A씨 명의로 차명계좌 1개를 개설하고, 금융상품 5건에 무단으로 가입하는 대담한 범행을 저질렀다.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은 분실된 구 신분증을 이용한 거래를 단 한 번도 걸러내지 못했다.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당 직원은 세무서에서 A씨의 '소득금액증명원' 서류까지 두 차례나 무단으로 발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모든 사실은 금융감독원의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고, 금감원은 은행 측의 명백한 위반 행위를 적발했다.
A씨는 금전적 피해는 크지 않지만, 자신의 신용과 정보가 유린당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은행과 직원 2명을 상대로 '나홀로 소송'을 시작했다.
"직원 인센티브까지 뱉어내라"…손해배상 범위는?
A씨는 무단 해지로 인한 이자 손실, 상품 해지 후 1년이 지나서야 돈을 돌려받은 데 따른 지연손해금, 그리고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A씨는 직원이 불법 행위로 얻은 '인센티브와 실적'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찬 변호사는 "은행 직원이 받은 인센티브나 실적 자체를 원고가 손해배상으로 직접 청구하는 것은 법리상 인정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을 수 있어, 실제로 그 실적 때문에 발생한 손해와의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즉, 직원이 얻은 이익이 곧바로 피해자의 손해로 인정되기는 어려우며, 이를 주장하려면 손해와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여러 변호사들은 이 부분을 '위자료 증액' 사유로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동규 변호사는 "그러나 피고들이 질문자님의 개인정보를 무단 도용하여 사적 이익을 취 취득했다는 정황은 불법 행위의 고의성과 비난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근거가 되므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인 위자료 액수를 증액시키는 사유로 주장하셔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직원의 부도덕성을 부각해 정신적 피해의 크기를 인정받으라는 전략이다.
금감원 '위반 인정', 법정서 은행 책임 가를 '결정적 증거'
이번 소송의 가장 큰 무기는 단연 금융감독원의 '위반행위 인정' 자료다. 전문가들은 이 자료가 은행의 책임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김범석 변호사는 "은행 직원의 명의도용 및 무단 가입행위는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사용자인 은행법인은 민법 제756조 사용자책임에 따라 연대책임을 부담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금감원의 결정문은 은행 측의 과실과 위법성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특히 신분증이 재발급된 후에도 구 신분증으로 거래가 반복 승인된 점은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정황이다.
A씨가 제출한 정신과 진단서 역시 중요한 증거다. 김도훈 변호사는 "정신과 진단서 역시 정신적 손해를 입증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라며 명의도용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가오는 첫 변론기일에서 A씨가 이 증거들을 바탕으로 얼마나 체계적으로 은행의 책임을 주장할 수 있을지가 재판의 향방을 가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