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의사' 동원한 약국 개설 사기 의혹…임대인·브로커 공모 땐 '공동정범'
'가짜 의사' 동원한 약국 개설 사기 의혹…임대인·브로커 공모 땐 '공동정범'
법조계 "명백한 기망행위, 형사고소 및 손해배상 동시 진행해야…공모 여부 입증이 관건"

병원 동시 개원을 믿고 수억 원을 투자해 약국을 연 약사가 사기 피해를 호소했다./AI 생성 이미지
"함께 병원 열자던 그 사람이 의사가 아니었습니다"…수억 날린 약사의 눈물
신규 약국 자리를 알아보던 약사 A씨에게 브로커의 제안은 '꿈의 기회'처럼 다가왔다. 병원과 약국이 동시에 문을 여는, 이른바 '한 건물 메디컬 빌딩'의 약속이었다.
A씨는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B씨, 그리고 건물주인 임대인과 마주 앉아 청사진을 그렸다. 장밋빛 미래를 확신한 A씨는 대화 녹취와 문자까지 확보하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악몽의 서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A씨는 약속을 믿고 지난해 7월 계약금을, 8월에는 건물 공사를 위해 보증금 잔금 전액을 임대인에게 지급했다. 곧바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인테리어 공사에도 착수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병원 인테리어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A씨의 약국 공사 역시 속절없이 멈춰 서야 했다.
기다림 끝에 A씨는 10월 먼저 약국 문을 열었지만, 핵심인 병원은 해가 바뀐 1월까지도 개원하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가던 A씨는 최근 임대인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A씨와 함께 개원을 약속했던 B씨가 실제 의사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알고 보니 임대인은 '가짜 의사' B씨와 임대계약을 맺었고, B씨는 다시 다른 실제 의사에게 병원 자리를 넘기는 전대차 계약을 추진 중이었다.
A씨는 '가짜 의사' B씨와 브로커, 그리고 임대인까지 사기 및 계약 불이행으로 고소할 수 있는지 법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한 팀인 줄 알았는데"…'가짜 의사'와 브로커, 임대인의 '검은 커넥션'
법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사기죄' 성립 가능성을 높게 봤다. 병원과의 동시 개원은 약국 임대차 계약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인데, 의사 신분을 속인 것 자체가 명백한 기망행위(상대방을 속이는 행위)라는 분석이다.김상훈 변호사(법무법인 대환)는 "만약 '의사'가 실제 의사가 아니라 사실상 '사무장병원'처럼 개원을 시도하는 위험한 사정을 알았다면 임대차계약 등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 알리지 않은 자들은 형사상 사기죄에 해당된다"고 분석했다. 의사 행세를 한 B씨는 물론, 이 사실을 알면서 계약을 중개한 브로커나 임대인 역시 사기죄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형사 책임의 범위는 '공모 여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정다미 변호사(법무법인 LKB평산)는 "임대인이 '의사가 의사 아닌 사실'을 계약 때부터 알았는지 여부에 따라 고소 가능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신현돈 변호사(법률사무소 금옥)는 "임대인이나 브로커가 계약 당시 의사가 '가짜'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해, 이들의 인지 시점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인테리어에 대출까지 수억 원"…피해액, 어디까지 돌려받을 수 있나
형사 고소와 별개로 A씨가 입은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민사 소송도 가능하다. A씨는 이미 지급한 보증금과 대출까지 받아 집행한 인테리어 비용, 그리고 병원 미개원으로 인한 영업 손실까지 떠안은 상태다.최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율)는 "기망에 의한 계약이므로 계약 취소 및 원상회복(보증금 반환) 청구가 가능하다"며 "특약사항에 근거한 인테리어 비용 배상, 병원 개원 지연으로 인한 영업손실 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A씨의 계약서에는 '병원 개원 후 2년 내 폐업 시 인테리어비 전액 보상' 조항이 있지만, 이는 개원을 전제로 한 것이라 현재 상황에 직접 적용하기보다 계약 자체의 무효나 취소를 다투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형사 고소를 먼저 진행해 수사기관을 통해 '가짜 의사'의 정체와 임대인·브로커의 공모 관계를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와 진술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조언처럼, A씨의 싸움은 형사 고소로 '공모 관계'의 퍼즐을 맞춘 뒤 민사 소송으로 피해를 복구하는 기나긴 여정이 될 것이다. 결국 이 법정 다툼은 '장밋빛 꿈'을 제안했던 이들의 '민낯'을 어디까지 밝혀낼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