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자백, 피해자는 없다”…딥페이크 공포 속, 캠퍼스로 돌아온 그 남자
“가해자는 자백, 피해자는 없다”…딥페이크 공포 속, 캠퍼스로 돌아온 그 남자
증거불충분 족쇄에 묶인 피해자들, 학교는 “징계 불가”…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대학 내 디지털 성범죄 실태

동기 여학생들의 사진으로 음란물을 제작·유포하고도 증거불충분으로 처벌을 피한 남학생이 복학을 강행해, 피해자들이 2차 가해 위험에 노출됐다./셔터스톡
학과 동기 남학생이 여성 사진으로 음란물을 만들었다고 자백했지만, 피해자들은 법적 보호 없이 가해자와 마주할 위기에 처했다.
2024년 9월, 한 대학 캠퍼스가 발칵 뒤집혔다. 같은 과 남학생 A씨가 동기 여학우들의 사진을 이용해 텔레그램 ‘지인능욕방’ 등에서 불법 합성 음란물을 제작·유포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는 심지어 “미성년자 시절부터 연예인 합성물로 돈을 벌었고, 범죄 대상을 주변 지인으로까지 넓혔다”고 털어놨다. 피해 학생들은 자백을 듣자마자 그를 경찰에 신고했다.
자백은 있는데, 왜 ‘증거’는 없다는 건가?
경찰의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증거 분석) 조사 과정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였다. 그들은 수백 장에 달하는 끔찍한 합성 음란물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어떤 원본 사진이 쓰였는지 식별해야 했다. 피해자 중에는 미성년자와 학교 선생님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한 피해 학생은 “오래전에 찍어 잊고 있던 사진까지 발견됐다”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결론은 ‘증거불충분’이었다. 경찰은 “피해 학생들의 합성된 사진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종결했다. 가해자의 자백과 그의 저장 장치에서 나온 수많은 사진에도 불구하고, 어떤 원본 사진이 어떤 합성물로 만들어졌는지 일대일로 명확히 입증하기 어렵다는 기술적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결국 검찰 단계까지 ‘피해자’로 분류됐던 한 학우마저 ‘참고인’ 신분으로 바뀌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있는데, ‘피해자’는 없다?…학교의 외면
진짜 악몽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형사 처벌을 피한 가해자 A씨가 이번 학기에 버젓이 복학을 강행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피해 학생들은 가해자와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극심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들은 학교 측에 A씨의 징계와 분리 조치를 간절히 호소했다.
그러나 학교의 답변은 절망적이었다. 학교 측은 “형사사건에서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가 징계나 조치를 취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가해자의 범죄 사실을 아는 학생들이 적지 않지만, 학교는 절차적 정당성만 내세우며 학생 보호 의무를 사실상 외면했다. 피해 학생들의 학습권은 공포감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진실을 말하면 ‘범죄자’ 되나…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덫
결국 학생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섰다. 총장실과 학과사무실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학내에 대자보를 붙여 사건을 공론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다른 법의 덫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다.
진실을 말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학생들은 법률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변호사들은 한목소리로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김우중 변호사(법무법인 선)와 박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유)는 가해자를 상대로 법원에 ‘접근금지가처분’을 신청해 물리적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대자보 게시에 대해서는 김경태 변호사가 “'학내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사건에 대한 학교의 적절한 대응 촉구'와 같이 공익적 목적으로 접근하고, 가해자의 자백 등 객관적 사실만 언급해야 명예훼손 시비를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반면 김수민 변호사(법률사무소 건영)는 “적시된 사실이 허위로 판단될 경우 공익성이 있어도 면책되지 않는다”며 증명 가능한 사실만으로 내용을 구성할 것을 강조했다.
법의 빈틈 파고든 딥페이크…전문가들이 본 쟁점은?
이번 사건은 디지털 성범죄의 법적 쟁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증거 입증의 어려움’과 ‘대학의 소극적 대응’을 핵심 문제로 꼽는다. 가해자가 범행을 시인해도, 수사기관은 ‘어떤 원본 사진’으로 ‘어떤 합성물’을 만들었는지 명확히 연결해야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 딥페이크 기술은 원본을 심하게 변형시켜 이 연결고리를 끊기 때문에, ‘자백’만으로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대학의 ‘징계 불가’ 입장 역시 법적 딜레마를 드러낸다. 형사 절차에서 무혐의 처분이 나온 가해 학생을 징계할 경우, 해당 학생이 ‘부당 징계’라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학교로서는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 형사사건 결과를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를 취하게 되고, 그 사이 피해 학생들의 고통은 방치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법의 사각지대와 제도의 공백 속에서, 피해자들은 오늘도 가해자와 마주칠지 모른다는 공포와 싸우며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기술은 법을 앞서가고, 제도는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현실이 캠퍼스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