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정신에 개표하고 싶다" 선관위 노조의 '사전투표 폐지' 제안, 그 이면의 속사정
"맨정신에 개표하고 싶다" 선관위 노조의 '사전투표 폐지' 제안, 그 이면의 속사정
선관위 노조, "사전투표 폐지·익일 개표" 등 제도 개선 제안
"과부하로 인한 구조적 부실" vs "국민 참정권 축소" 시각차 뚜렷

선관위 공무원노조가 선거 관리 인력 과부하를 이유로 사전투표 폐지와 익일 개표 등을 제안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사전투표의 편리함 이면에는 30시간 연속 근무에 시달리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피로와 잔실수가 도사리고 있었다.
최근 선관위 공무원노동조합이 더불어민주당 선거제도 개혁 TF에 사전투표 폐지와 투표시간 조정, 익일 개표 등을 골자로 한 자체 개혁 방안을 전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선거 관리 부실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노조 측 입장과, 헌법상 보장된 국민 참정권을 축소한다는 비판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2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김규범 선관위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같은 제안 배경으로 인력의 한계와 과부하를 꼽았다.
사전투표 개시일부터 5일간 풀가동⋯"구조적 부실 나올 수밖에 없어"
김규범 위원장은 "2014년 사전투표가 도입된 이래 12년 동안 너무 업무가 타이트하게 돌아간다"며 "선거일은 보통 하루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전투표 개시일인) D-5일부터 5일간 선거가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업무가 집중되다 보니 부실한 사태들이 중간중간 자꾸 터져 나온다"며 "구조적으로 부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최근 불거진 송파구 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 역시 이러한 과부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노조 측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현장 보고는) 매 선거 때마다 일부 투표소에서 발생했던 사안"이라며, 이번 사태 원인으로 피크타임 인력 공백을 지적했다.
그는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가 피크인데, 그 시각에 상당수 직원이 개표 준비를 위해 개표장으로 가 있어 빨리 조치를 해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잔실수 막으려면 맨정신에 일해야"⋯익일 개표 제안한 이유
노조가 제시한 또 다른 파격적인 제안은 '익일 개표'다. 투표 마감 직후 밤을 새워가며 진행하는 현재 개표 방식이 근무자들을 극한의 피로로 몰아넣어 오히려 개표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김규범 위원장은 "지자체 공무원들이 새벽에 나와 투표 관리를 하고 밤늦게 개표까지 하면 거의 30시간을 근무하게 된다"며 "밤 10시, 11시가 넘어가면 사람이 눈이 멍해지고 판단이 흐려져 잔실수가 막 나온다"고 토로했다.
이어 "직원들 입장은 집에 가서 잠 좀 자고 와서 맨정신에 개표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신속성도 중요하지만,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익일 개표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선거철 얌체 휴직'
선거 현장의 인력난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인 일부 직원들의 '선거철 얌체 휴직'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5번의 선거 중 4번이나 선거 기간에 맞춰 휴직을 한 직원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을 샀다.
이에 대해 김규범 위원장은 "제도를 악용한 직원이 있을 수 있다. 진짜 악용했다면 나쁜 직원"이라며 얌체 휴직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했다.
그는 "선거 때마다 피해가는 직원은 내부적으로 알고 입소문도 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법적 테두리 내에서 한 일이기 때문에 제재를 가할 수는 없다"고 한계를 밝혔다.
노동자 권익 vs 국민 참정권
선관위 노조의 이번 제안은 선거 관리 실무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문제 해결 방식이 대국민 서비스 축소, 즉 참정권 제한으로 이어지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김규범 위원장 역시 이 같은 국민적 시각 차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민주당 TF 회의 당시 한 의원으로부터 "국민 시각에서 과연 제대로 받아들일까"라는 우려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저는 선관위 노조위원장이니까 노조위원장 입장에서 (개선책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