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5)] '무효'와 '취소'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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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5)] '무효'와 '취소'의 차이는?

2019. 11. 04 11:24 작성
호문혁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homo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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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효'와 '취소'는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무효'는 말 그대로 아예 효력이 없는 것이다. '취소'의 경우는 취소권을 가진 이가 취소의 의사표시를 하여야 취소가 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편집자 주

원로법학자 호문혁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시민이 알아야 할 기초적인 법 이야기를 재미있는 에세이 형식으로 연재한다. 호문혁 교수는 사법정책연구원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초대 이사장 등을 지내고 저서 「민사소송법」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민사법학자다.


친구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가끔 듣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 저녁 모임은 무효야!" 대개 그 모임의 핵심 인물이 나오지 못하거나, 한턱 크게 쏠 생각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비용을 낸 경우에 나오는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은 그냥 하는 것일 뿐이고 법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행위를 하는 사람이 법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겠다고 생각을 해도 그 행위가 무효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A가 1년 안에 달나라에 있는 옥토끼를 잡아서 B에게 갖다주면 B가 A에게 3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는다고 해서 거기에 법적인 효력을 부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불가능한 일을 목적으로 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 법은 이처럼 법률행위가 무효인 경우를 여러 곳에서 규정한다.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한 행위는 무효이다. 예를 들어 멀쩡한 부인을 두고 따로 작은집(?)을 차리는 이른바 첩(妾) 계약은 우리 가족제도의 뼈대인 일부일처제를 위반한 것이어서 효력이 없다. 상대방의 어려운 상황이나 경솔함, 무경험을 악용하여 폭리를 취하는 행위도 우리 사회질서가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무효이다. 감정 가격이 5천만 원인 고려자기를 가진 사람이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한다는 사정을 악용하여 50만원으로 깎아내려서 사기로 하는 계약은 효력이 없다. 대출 한도 제한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A가 은행의 양해 아래, 마치 B가 대출을 받는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자기가 대출받기로 하는 대출 약정은 A와 은행이 짜고 꾸민 허위표시이어서(통정허위표시) 무효다. 그 밖에도 혼인한 당사자 한쪽이 상대방 몰래 혼인신고를 한 경우처럼 혼인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경우와 8촌 이내의 혈족끼리 혼인한 근친혼인 경우에 그 혼인은 무효이다.


달나라에 있는 옥토끼를 잡아 오면 3천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는다고 해서 거기에 법적인 효력을 부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러한 무효와 비슷한 것에 취소가 있다. 지난번에 설명한 대로 예를 들어 미성년자가 부모의 동의 없이 법률행위를 하거나 피성년후견인이 스스로 법률행위를 하였으면 이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 한정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한 법률행위를 피한정후견인이 한정후견인의 동의 없이 하였을 때도 그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취소할 수 있는 행위가 많다. 행위의 상대방에게 속거나 협박에 못 이겨서 한 의사표시(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관한 착오로 잘못한 의사표시도 취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앵무새를 살 생각이었는데 이름을 잘못 알고 까마귀를 산다고 계약을 한 경우이다. 만 18세가 되지 않은 사람의 혼인이나, 동의가 필요한데 동의 없이 한 혼인, 이미 배우자 있는 자가 한 혼인(중혼) 등은 취소할 수 있다.


'무효'는 말 그대로 법률상 당연히 효력이 없는 것이라서 누가 굳이 주장하지 않더라도 처음부터 아예 효력이 없다. 그러면 '취소'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무효와는 달리 취소 사유가 있더라도 취소권을 가진 이가 취소의 의사표시를 하여야 취소가 된다. 취소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그 행위는 그대로 효력을 유지한다. 그래서 법조문에서는 "…… 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그러면 취소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취소권자가 취소하면 취소된 행위나 의사표시는 행위 당시로 소급하여 무효가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행위도 그 행위를 한 이가 취소의 원인이 소멸한 뒤에 추인(追認)하면 유효한 행위가 된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속아서 고양이를 강아지로 잘못 알고 사겠다고 계약을 했어도 나중에 고양이임을 알고 나서 그냥 고양이를 사겠다고 하면 그 의사표시는 효력을 갖게 되고, 그 후에는 취소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계약 등의 법률행위를 하거나 의사표시를 할 때는 무효나 취소 사유가 없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행위, 폭리행위 등은 아예 단념할 것이며, 착오나 사기, 강박에 빠져서 한 행위는 취소하더라도 상대방이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매우 골치 아픈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특히 일생을 좌우하는 혼인을 할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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