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근무…과로로 쓰러진 공장 직원, 산재 인정 안 해준 공단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근무…과로로 쓰러진 공장 직원, 산재 인정 안 해준 공단
연차 반납에, 주말에도 출근…격무에 시달렸던 직원
뇌경색 진단받고 산재 신청했지만⋯산재 '불인정'
근로복지공단 "근무시간 주 52시간 안 넘어⋯기존 질환 악화된 것 뿐"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생산 관리 업무를 맡고 있던 A씨의 근무시간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길었다. 하루에 기본 10시간 이상을 일했다. A씨의 선택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그렇게 일하길 요구했다. 그러다 쓰러진 A씨.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로 보지 않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연합뉴스⋅편집=조소혜 디자이너
13시간 14분, 12시간 52분, 11시간 20분….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생산 관리 업무를 맡고 있던 A씨의 근무시간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길었다. 하루에 기본 10시간 이상을 일했다. A씨의 선택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그렇게 일하길 요구했다.
주말에도 출근했다. 퇴사자의 업무는 A씨에게 몰려들었다. 그의 삶 90%가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A씨는 길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즉각 응급실로 이송됐고,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그즈음은 "연·월차 금지, 7시 출근, 휴가 없을 수도 있음"이라는 내용의 통보를 받은 때였다. 극도의 업무 스트레스로 5년 넘게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외롭게 버티던 그를 더 흔들만한 내용이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회사로부터 고통받던 A씨.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A씨와 공단 간의 법정 싸움이 시작됐다.
지난 2005년 한 공장에 입사했던 A씨. 순탄했던 업무에 변화가 생긴 건 A씨가 승진을 하면서였다. 업무량이 벅찰 정도로 늘어났다. 회사는 주말에도 그를 불러 일을 시켰다. 타 부서 업무를 맡기는 건 예삿일이었다. 여기에 촉박한 지시까지 더해져 A씨의 몸과 마음은 항상 긴장 상태였다.
어수선한 공장 분위기도 그를 힘들게 한 요인이었다. 임원 구성과 조직도가 자주 바뀌었고 그럴 때마다 불합리한 인사 조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19년 동안이나 일한 동료도 한순간에 잘렸다. A씨는 언제 누구와 일하게 될지 몰라 불안했다. 물론 자신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장도 불편한 존재였다. 항상 "야" 소리를 붙이는 공장장은 술만 마시면 A씨에게 화를 냈다. 그의 정신과 진료 기록에는 "가슴속이 꽉 차 있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날 회의에 늦을까 봐 잠이 안 온다", "삶이 항상 불안하다"는 등 그가 느낀 버거움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진 계기는 부서 발령이었다. A씨는 12년 동안 하던 업무를 내려놓고 처음 하는 생산관리팀 업무를 익혀야 했다. 하지만 팀을 옮겼다고 해서 이전에 맡은 업무에서 손을 뗄 수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의 만성적인 과로는 해소될 틈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A씨가 쓰러졌을 무렵 회사 지침이 갑자기 바뀌었다. 매출이 떨어졌다며 연차 사용을 금지했고, 출근 시간도 오전 7시로 변경됐다. 회의 준비를 맡고 있던 A씨는 자연스레 그보다 일찍 나와야만 했다. 그는 해가 아직 뜨지도 않았을 때 출근해 해가 지고 나서야 퇴근했다. 가뜩이나 맡은 업무량도 많았던 그는 매출 압박도 이어지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결국 지난 2018년 7월, 횡단보도 앞에서 A씨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당일 뇌혈관 시술을 받고 이틀 뒤엔 뇌 수술을 받을 정도로 상태는 심각했다.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었다. 신체 한쪽이 마비되는 편마비 증상도 나타나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한 A씨. 공단은 회사 업무와 뇌경색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A씨는 산재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고혈압 등 A씨의 기존 질환이 악화돼 발병했다고 본 것이다.
A씨의 길었던 근무시간, 평일과 주말 가리지 않고 출근했던 사실이 기록된 근무시간표는 한낱 종이에 불과했다. 업무상 스트레스로 수년째 정신과 진료를 받은 기록도 무용지물이었다.
공단은 사고 발생 전 △24시간 이내에 업무와 관련된 돌발상황이 없었다는 점과 △A씨의 업무 강도와 환경이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뀌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한, 근무시간이 길긴 했지만 1주 평균 시간이 52시간(증상 발생 전 12주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다는 점도 '산재 불인정'의 근거가 됐다.
A씨를 대리해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 IBS공동법률사무소의 배진혁 변호사는 "단순히 평균 근로 시간으로만 과로 여부를 따진 기계적인 판단이었다"고 평가했다.

A씨는 배진혁 변호사와 함께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산재를 인정하지 않은 공단의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A씨는 '뇌경색과 업무의 인과관계'에 대해 병원 두 곳에서 감정을 받았다. 그랬더니 과로와 스트레스가 "(뇌경색) 발병 원인으로 작용했다" "최소한 뇌경색을 유발했거나 악화시켰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가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증거였다. 장기간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이러한 스트레스가 정신질환의 악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A씨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이 사건을 맡았던 서울행정법원 재판부(재판장 이성율 판사)는 지난 1월 "장시간 업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 회사 차원의 방침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육체적 피로를 유발하는 데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단순히 종전과 동일한 내용의 업무를 수행했더라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유발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회사가 매출 실적을 이유로 압박했던 것을 고려해야 하고,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가 뇌경색 발생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과로로 인한 뇌혈관이나 심장 질환 등을 산재로 판단할 때 참고하는 고용노동부 고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업무부담 가중 요인(높은 육체적 강도, 강한 정신적 긴장)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질병 발생 전 12주 동안 근무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증가한다는 내용이다.
배진혁 변호사는 "과로로 인한 업무상 재해는 단순히 근무시간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업무 강도 역시 중요한 판단 기준의 하나로 봐야 하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는 해당 과로와 업무상 재해의 인과관계를 높은 기준에 맞춰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시간만이 아닌 여러 정황을 종합하여 과로와 업무상 재해와의 인과관계를 판단해야 한다"고 배 변호사는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