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줍줍’ 가계약의 덫, 400만원이 5천만원 되나?
아파트 ‘줍줍’ 가계약의 덫, 400만원이 5천만원 되나?
문자 받고 모델하우스 갔을 뿐인데…'방문판매법' 14일의 기회가 있다

아파트 분양 광고 문자를 보고 가계약을 맺은 소비자가 며칠 만에 취소 의사를 밝혔으나, 시공사는 분양가의 10% 위약금을 요구했다. /AI 생성 이미지
"아파트 분양 광고 문자에 혹해 400만 원의 가계약을 맺었지만, 닷새 만에 취소 의사를 밝혔다가 분양가 10%의 위약금 폭탄을 맞았습니다."
계약서 서명은 곧 책임이라는 시공사와, 정식 서류도 안 낸 가계약이라는 소비자.
법률 전문가들은 광고 문자를 통한 유인이 '방문판매법'상 청약철회 대상이 될 수 있어 14일 내 위약금 없는 계약 철회가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5일 만의 변심, 날아온 '위약금 10%' 청구서
경기도 한 아파트의 '줍줍' 분양 광고 문자는 A씨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다. 지난 5월 30일, 기회라는 생각에 모델하우스를 방문한 A씨는 현장 분위기에 이끌려 400만 원을 입금하고 가계약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귀가 후 생각해 보니 중도금 대출과 자녀의 통학 문제 등 현실의 벽은 높았다. 깊은 고민 끝에 A씨는 계약 5일 만인 6월 4일 분양사무실에 전화로 계약 취소를 알렸고, 8일에는 '분양계약 철회 및 납부금 반환요청' 내용증명까지 발송하며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했다.
시공사는 묵묵부답이다가 6월 15일, 돌연 국토부에 부동산 거래계약 신고를 접수했다. 그제야 담당자는 "위약금 10%를 납부해야만 계약 취소가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A씨가 낸 400만 원을 포기하겠다는 제안마저 거절당했다.
A씨는 “인감도장, 인감증명서 등 정상 계약에 필요한 서류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이게 어떻게 정상적인 계약이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구원의 동아줄 '방문판매법'…14일의 철회 권리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사례가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방문판매법)’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평산 정진열 변호사는 광고 문자를 받고 모델하우스를 방문한 경우를 ‘전화권유판매’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 변호사는 "분양사 측에서 문자나 전화로 적극적으로 권유해 모델하우스(사업장)로 유인했다면, 이는 방문판매법 및 전화권유판매에 해당합니다. 이 법에 따르면 계약서를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아무런 페널티(위약금) 없이 계약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A씨가 계약일(5월 30일)로부터 9일 만인 6월 8일에 서면(내용증명)으로 철회 의사를 발송했으므로, 법적 요건을 충족했다는 것이다.
방문판매법상 청약철회는 서면을 발송한 날에 효력이 발생해, 시공사가 뒤늦게 거래신고를 했더라도 효력을 뒤집기 어렵다.
정 변호사는 "시공사가 계속 대화를 거부한다면 한국소비자원에 '방문판매법 위반 및 청약철회 거부’로 피해구제 신청을 하십시오”라고 구체적인 대응법을 제시했다.
'서명의 무게'…그래도 위약금 10%는 피할 수 없나
반면, 계약서에 서명한 행위의 무게를 강조하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법무법인 중산 김영오 변호사는 “분양사에서 가계약이라고 부르더라도, 계약서에 서명하고 대금을 납부했다면 법적으로는 정식 계약으로 취급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국토부 거래신고까지 마친 것은 시공사가 이미 본계약으로 판단했다는 강력한 증거라는 분석이다. 이 경우 분양가의 10%를 위약금으로 정하는 것은 법원도 유효하다고 보는 업계 관행에 해당한다.
하지만 위약금 조항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법무법인 창세 김정묵 변호사는 설령 계약이 유효하더라도 위약금 액수는 다툴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그러나 그 조항이 무조건 전액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계약 체결 경위, 위약금 설명 여부, 실제 손해, 계약 직후 철회 통보, 납부금이 400만 원뿐인 점 등을 들어 감액 또는 무효를 다툴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A씨가 시공사의 위약금 요구에 섣불리 응하지 말고, 계약서와 주고받은 내용증명 등 모든 증거를 확보해 법률 상담을 통해 치밀하게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