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성병" 전 여친의 카톡... A씨가 '고소' 대신 '이 종이'를 보낸 이유
"너 때문에 성병" 전 여친의 카톡... A씨가 '고소' 대신 '이 종이'를 보낸 이유
법조계 "내용증명, 소송보다 강력한 '경고장'... 허위사실 유포 막고 심리적 압박 가하는 효과"

A씨는 헤어진 전 여자친구가 헛소문을 퍼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용증명을 보내기로 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날벼락 같은 '성병' 통보... 고소 대신 '이것' 택한 이유?
이별을 통보한 바로 그날, A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전 여자친구 B씨의 메시지는 짧지만 치명적이었다. "너 때문에 성병에 걸린 것 같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A씨는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잡고 가장 가까운 비뇨기과로 향했다. 대기실의 1분 1초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몇 시간 뒤 받아 든 '전부 음성'이라는 검사 결과지에 안도한 것도 잠시, 더 큰 공포가 밀려왔다.
'만약 B가 이 거짓말을 내 직장 동료나 친구들에게 퍼뜨리면...?' 상상만으로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형사 고소라는 극단적 선택 대신, 자신의 명예를 지킬 최소한의 방패가 절실했다.
날벼락 같은 '성병' 통보... 고소 대신 '이것' 택한 이유?
A씨의 고민은 '처벌'이 아닌 '예방'에 있었다. 이미 허위임이 증명된 사실이 유포되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는 상황을 막고 싶었던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내용증명' 발송이 매우 효과적인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내용증명은 우체국을 통해 특정 내용을 특정 날짜에 상대방에게 보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증명하는 제도다. 그 자체로 상대방의 행동을 강제할 법적 효력은 없다. 하지만 A씨의 사례처럼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을 막는 '경고장'이자 '방패'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서아람 변호사는 "내용증명의 본질은 법적 구속력보다는 '분쟁 예방과 경고'에 있다"며 "상대방에게 '당신의 발언은 허위 사실이며, 반복되거나 외부에 유포될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남겨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적 효력도 없는데'... 내용증명, 왜 보낼까?
법적 강제력도 없는 편지 한 통이 어떻게 강력한 예방책이 될 수 있을까? 비밀은 '증거'로서의 가치에 있다. 만약 B씨가 내용증명을 받고도 허위 사실을 퍼뜨린다면, 이는 B씨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최광희 변호사는 "현재 확보한 증거를 근거로 경고성 내용증명을 보내면, 이후 실제 명예훼손 발생 시 '이미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어 소송에서 유리한 증거로 활용된다"고 조언했다.
현행법상 허위 사실 명예훼손은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윤동욱 변호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며 법적 책임을 분명히 했다.
변호사 이름 석 자, 왜 '최후통첩'이 되나
전문가들은 내용증명을 보낼 때 '변호사 명의'로 발송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개인이 보내는 것보다 훨씬 공식적이고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김시은 변호사는 "변호사를 통한 내용증명 발송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경솔한 행위가 일으킬 수 있는 법적 책임을 미리 경고함으로써, 행동에 대한 주의를 심어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아람 변호사 역시 "변호사 명의의 내용증명은 '추후 실제 법적 절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각인시켜 분쟁 억제 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는 본격적인 소송으로 가기 전, 최소한의 노력으로 상대에게 강력한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분쟁을 조기에 종결시킬 기회를 잡는 효율적인 카드인 셈이다.
섣부른 내용증명, 오히려 '독'이 될 수도
하지만 내용증명은 '양날의 검'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감정적인 대응이나 섣부른 내용증명 발송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병철 변호사는 "내용증명 발송이 상대의 반발심을 자극해 없던 갈등까지 만들어내거나, 감정싸움을 진흙탕 소송전으로 키우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오히려 당신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식의 반박 내용증명이 오가기 시작하면, 양측의 입장은 더욱 완고해져 합의의 가능성이 멀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내용증명을 보낼 때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한 변호사는 "문구에 감정적 표현을 철저히 배제하고,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 객관적 사실과 그에 따른 법적 책임 가능성만을 간결히 기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이는 상대방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결별의 아픔에 허위 사실의 낙인까지 찍힐 뻔한 A씨. 그가 보낼 한 통의 내용증명은 깨진 신뢰에 대한 마지막 경고이자,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첫 번째 방패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