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함께 살고파" 여성 군의관의 애원, 1600만 원 앗아갔다
"한국서 함께 살고파" 여성 군의관의 애원, 1600만 원 앗아갔다
우크라이나 파병 군의관이라더니…전형적 로맨스 스캠

한 중년 남성이 우크라이나 군의관을 사칭한 여성의 로맨스 스캠에 속아 1,600만 원의 피해를 당했다. / AI 생성 이미지
자신을 우크라이나에서 의료봉사 중인 군의관이라 소개한 여성의 달콤한 말에 속아 1,600만 원을 송금한 아버지.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 사기였다.
피해 회복을 위해 법률 자문을 구하자, 변호사들은 해외 주범을 쫓는 막연한 기대보다 국내 '대포통장' 명의자를 특정하는 형사 절차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 해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엔 아무도 없어요"…여권 사진으로 쌓아 올린 거짓 신뢰
모든 일은 2025년 10월,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시작됐다. 한국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자랐고,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군인들에게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군의관이라고 주장하는 한 여성이 접근해 왔다.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이어간 여성은 "한국에 아무도 없다", "한국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는 감성적인 말로 신뢰를 쌓았다. 심지어 자신의 것이라며 여권 사진까지 보내는 치밀함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열었다.
믿음이 깊어지자 여성의 요구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해외 금고를 국내로 옮기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더니, 이내 한국으로 오는 항공료가 부족하다며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결국 아버지는 2025년 11월, 800만 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여성의 한국행은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미뤄졌다. 아버지가 이상함을 느껴 따져 물어도 여성은 교묘한 답변으로 상황을 모면했고, 결국 2026년 3월 추가로 800만 원을 송금하고 말았다.
총 피해액 1,600만 원. 아버지는 두 차례 경찰서를 찾았지만, 돈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주범은 해외에, 계좌 주인은 '개털'"…냉혹한 현실
피해액을 되찾을 길은 험난하다. 사기 주범은 해외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돼 신원 파악조차 어렵다. 돈이 흘러들어간 국내 계좌 역시 범죄에 이용된 '대포통장'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해외 주범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돈이 입금된 계좌 명의인에게 책임을 물으면 되지 않을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설령 수사를 통해 명의인이 특정돼도, 범죄 가담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책임을 입증하더라도 돈을 돌려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솔루젠 법률사무소 송승환 변호사는 "책임이 있어도 돈이 없는, 즉 '개털'이면 받아낼 수가 없는데, 통장을 제공하는 애들은 보통 다 '개털'입니다"라며 냉혹한 현실을 짚었다.
"섣부른 소송은 금물, 형사 수사가 먼저" 전문가들 한목소리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섣부른 민사소송보다 형사 절차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형사 고소를 통해 대포통장 명의인과 자금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피해 회복의 첫 단추라는 것이다.
법무법인 도모 고준용 변호사는 "지금 바로 소송을 제기하기보다, 형사 수사 기록을 통해 계좌 명의인의 인적사항과 범죄 가담 경위가 확보된 이후 민사 소송을 병행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가 향후 민사소송에서 결정적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형사 고소는 가해자들을 압박해 스스로 돈을 갚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법무법인 공명 김준성 변호사는 재산범죄 사건에서 피해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수사 과정에서 가해자가 처벌의 압박을 느껴 합의에 이르는 것이 최선의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 금액과 변호사 비용 등을 포함한 합의금을 받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전략이다.
지금 당장 할 일? '지급정지'부터 신청해야
그렇다면 지금 당장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한 조치는 무엇일까?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는 송금 계좌 명의인을 상대로 한 소송이 현실적인 회수 방법이지만, 그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송금한 은행이나 경찰을 통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 특별법'에 따른 계좌 지급정지를 신청하는 것이다.
이미 돈이 인출됐을 수 있지만, 계좌에 남은 돈이나 이후 입금될 금원이라도 확보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는 추가 송금을 절대 금하고, 모든 증거를 확보해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최선이다. 성급한 민사소송은 시간과 비용만 낭비할 수 있기에, 형사 수사 결과를 기다리며 대응 전략을 짜는 것이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