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입니다, 곧 출석하세요”…혐의도 모른 채 조사 통보받았다면
“경찰입니다, 곧 출석하세요”…혐의도 모른 채 조사 통보받았다면
사건번호부터 묻고 고소장 확보가 우선
변호사들이 말하는 수사 초기 생존 전략

혐의도 모른 채 경찰로부터 출석 통보를 받은 시민은 어떤 방어 전략을 세워야 할까. /셔터스톡
"OO경찰서 OOO 수사관입니다."
낯선 번호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한 상대방은 '조사받을 일이 있으니 곧 출석하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고소인은 누구인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평범한 시민 A씨가 순식간에 잠재적 피의자로 전락한 순간, A씨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렸다.
"내 혐의가 뭐죠?" 침묵하는 수사관, 왜?
A씨처럼 경찰로부터 '조사 예정' 통보만 받고 구체적인 혐의를 듣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형사사법포털(KICS)에도 사건이 조회되지 않고, 사건번호조차 없어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도 없는 막막한 상황. 시민 입장에서는 불안과 공포가 앞설 수밖에 없다.
변호사들은 이 단계에서 섣불리 대응하기보다 침착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수사 개시 사실을 통보할 의무가 있지만, 수사 초기 단계에서는 증거인멸이나 관련자들의 말 맞추기 등을 우려해 혐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A씨의 답답함 뒤에는 수사기관의 전략적 판단이 숨어있는 셈이다.
첫 번째 무기 '정보공개청구'
그렇다면 A씨가 이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가장 먼저 휘둘러야 할 무기는 무엇일까. 바로 '정보'다.
법무법인 선승의 안영림 변호사는 "고소 사건인지,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시작한 인지 사건인지 등 사건의 종류와 본인의 신분(피의자·참고인)을 명확히 묻는 것이 대응의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수사관에게 다시 연락해 관할 경찰서와 사건번호를 확보했다면, 다음 단계는 '고소장 정보공개청구'라는 강력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고소장을 확보하면 누가, 어떤 내용으로 문제를 제기했는지 파악해 비로소 방어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진행 중인 수사라는 이유로 일부 정보가 가려질 수 있지만, 최소한의 기록 목록만으로도 A씨는 자신을 향한 공격의 실체를 파악할 실마리를 쥐게 된다.
섣부른 응답은 '족쇄' 될 수도
수사관과의 첫 통화는 그 자체로 '비공식적인 조사'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법무법인 창세의 장혜원 변호사는 "통화 내용이 녹취될 수 있음을 유념하고, 혐의가 명확해지기 전까지 불리한 진술을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덜컥 겁을 먹고 묻는 말에 모두 답하거나, 임의로 경찰서에 출석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
어떤 말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지 모르는 '안갯속' 상황에서는 말을 아끼는 것이 최선이다. 장 변호사는 "'변호사를 선임해 입장을 정리한 뒤 연락하겠다'고 답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A씨가 사용할 수 있는 첫 번째 방어막이다.
변호인, 가장 강력한 '방패'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두 가지 강력한 법적 권리를 부여한다. 바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다. 이는 수사기관의 막강한 권력 앞에서 개인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튼튼한 '방패'다.
법무법인 대한중앙의 조기현 변호사는 "참고인이든 피의자든 경찰 수사 단계에서 변호사가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첫 조사부터 변호인과 동석해 합당한 방어권을 행사해야 부당한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강력히 조언했다.
변호사는 수사관의 부적절한 질문을 차단하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피조사자를 대신해 법적 주장을 펼치는 든든한 방패이자, 날카로운 창이 되어준다.
수사기관의 문턱 앞에서 당황하기보다, 법이 보장하는 방패와 무기를 손에 쥐고 당당히 맞서는 것이 억울한 처벌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