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소송 중 '조정' 통보…“이사 갈 집, 계약해도 될까요?”
전세금 소송 중 '조정' 통보…“이사 갈 집, 계약해도 될까요?”
전문가들 “조정문에 '지급기일'과 '불이행 시 책임' 명시가 핵심… 약속 어기면 즉시 강제집행 가능”

전세 만기 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과 기나긴 법적 다툼에 들어간 A씨. 결국 법원은 이 사건의 조정에 들어갔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전세금 소송 막판 '조정' 통보…판결문급 효력 갖는 '이 조항' 모르면 낭패
전세 만기 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과 기나긴 법적 다툼에 들어간 세입자, 조정기일을 앞두고 이사 계획과 법적 대응 방안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전세 계약이 끝난 지 수개월, 하지만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줄 생각이 없다. 결국 법정까지 갔지만 판결 직전 '조정'에 참여하라는 통보가 날아왔다. 세입자 A씨는 눈앞이 캄캄하다. 당장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보증금을 받아야만 나갈 수 있는 이 현실. A씨는 조정기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대체 어떻게 해야 내 돈을 받고 무사히 이사할 수 있느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 세입자 구해지면 그때…” 집주인의 변명에 시작된 싸움
A씨의 악몽은 약속된 전세 만기일이 지났지만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와야 보증금을 줄 수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A씨는 법적 절차에 돌입했다.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세입자가 이사를 가더라도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하게 하는 조치)을 신청하고, 곧이어 지급명령(법원이 채무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내리는 간이한 명령)까지 받아냈다.
하지만 집주인은 이의를 신청하며 소송전으로 끌고 갔다. 기나긴 변론 끝에 드디어 판결 선고일까지 잡혔지만, 집주인이 돌연 변호사를 선임해 변론 재개를 신청하면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결국 법원은 양측을 조정 절차에 회부했고, 오는 10월 1일 조정기일이 열리게 됐다. A씨는 보증금은 물론, 그간의 소송 비용과 대출 이자까지 받아내고 싶지만, 조정이 제대로 이뤄질지, 합의 후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불안감에 휩싸였다.
“조정은 협상 테이블…'최대한 요구'하고 '문서'로 남겨라”
법률 전문가들은 A씨와 같은 상황일수록 조정 절차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러 변호사들은 “조정에 참여할 때는 가능한 한 많은 금액을 주장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A씨가 원하는 보증금 전액, 임차권등기·지급명령에 들어간 비용, 만기 이후 발생한 전세대출 이자까지 모두 당당하게 요구하라는 것이다.
핵심은 조정이 성립될 때 작성하는 ‘조정조서’의 내용이다. 법무법인 아크로의 박동민 변호사는 “조정이 성립되면 확정된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조정조서는 단순한 합의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집행권원(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권리 문서)이 된다. 따라서 ‘언제까지, 어떤 금액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명확히 하고, “만약 약속한 날짜까지 돈을 주지 않으면 즉시 강제집행을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식의 ‘불이행 시 책임’ 조항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돈 받고 이사’ vs ‘이사 가야 돈 준다’… 동시이행의 딜레마
A씨의 가장 큰 고민은 ‘동시이행’의 딜레마다. 우리 민법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와 임차인의 주택 명도(집을 비워주는 것) 의무를 동시이행 관계로 본다. 쉽게 말해, 서로 동시에 주고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A씨는 보증금을 받아야 새로 이사 갈 집의 잔금을 치를 수 있는데, 법적으로는 집을 비워줘야 보증금을 받을 권리가 온전히 생긴다. 이 탓에 섣불리 새집을 계약하기가 두렵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 역시 조정조서에 명확한 이행 방법을 명시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임대인은 2025년 10월 1일 임차인에게 보증금 전액을 지급하고, 임차인은 해당 금액을 수령함과 동시에 임대인에게 주택을 명도한다”고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것이다.
더신사 법무법인의 정찬 변호사는 한발 더 나아가 “보증금을 받아야 이사를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지급이 확정되기 전까지 이사 계약을 신중히 해야 한다”며 “새로 구할 집의 계약서에 ‘현 임대인에게 보증금이 입금된 후 계약금을 지급한다’는 특약을 넣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만약 집주인이 또 약속을 어기면?…'판결문' 효력으로 즉시 강제집행
만약 집주인이 공들여 만든 조정조서의 약속마저 어긴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 조정조서는 ‘확정 판결문’과 같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A씨는 별도의 소송 없이 이 조정조서를 가지고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다. 집주인의 부동산이나 예금 등 재산을 압류하고, 최악의 경우 살던 집을 경매에 넘겨 보증금을 회수하는 절차를 곧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주의할 점도 있다. 법무법인 아크로 박동민 변호사는 “상대방에게 자력(재산)이 없어 이행하지 않는다면 강제집행을 해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에 선순위 근저당이나 다른 세입자들이 많다면 경매를 통해 보증금 전액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조정에 임하기 전, 집주인의 재산 상태나 해당 주택의 권리관계를 미리 파악해두는 것이 현명하다.
결론적으로, 전세금 반환 분쟁에서 ‘조정’은 소송보다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그 기회를 잡으려면, 지급 기한과 불이행 시 책임을 명확히 한 ‘족쇄’를 조정조서에 채워야만 한다. 법의 보호는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고 문서로 남기는 자에게 더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