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온다며 30분 지각” 변호사, 결정문 숨겨 의뢰인 마지막 재판 기회 날렸다
“눈 온다며 30분 지각” 변호사, 결정문 숨겨 의뢰인 마지막 재판 기회 날렸다
법조계 “지각 책임 애매해도 결정문 미전달은 명백한 위법”…성실의무 위반에 손해배상 책임 무게

부당해고를 다투던 A씨는 변호사가 행정소송에 필요한 결정문을 고의로 전달하지 않은 탓에 마지막 소송 기회마저 박탈당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믿었던 변호사의 배신…결정문 한 장에 마지막 재판 기회 날아갔다
부당해고를 다투던 A씨는 자신을 변호해야 할 변호사 때문에 마지막 소송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변호사가 행정소송에 필요한 결정문을 고의로 전달하지 않은 탓이다. 변호사의 가장 기본적인 '성실의무'가 무엇인지 묻는 사건이다.
“눈 와서 늦었다”...재판 지각으로 시작된 균열
사건의 시작은 황당한 지각이었다. 부당해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법정에 선 A씨. 하지만 그의 법률 대리인이었던 변호사는 “눈이 와서 늦었다”는 이유로 재판에 3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첫 번째 균열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법률 전문가들은 변호사의 ‘재판 지각’만으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봤다. 심규덕 변호사(법무법인 심)는 “30분 지각한 것만으로 직접적인 성실의무 위반으로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변호사의 불성실함은 엿보이지만, 지각 행위가 패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 즉 명확한 인과관계(변호사의 지각 때문에 재판에서 졌다는 직접적 연결고리)를 증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소송 안 한다면서요?”...희망의 불씨 꺼버린 두 번째 배신
첫 재판 결과에 격분한 A씨는 홧김에 변호사에게 “행정소송은 안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진심이 아니었다. A씨는 다음 소송을 준비하며 조용히 증거를 모으고 있었다. 행정소송을 제기하려면 법원의 결정문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결정문 수신처는 오직 담당 변호사 사무실로만 지정돼 있었다.
기다림은 배신으로 돌아왔다. 한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A씨가 먼저 연락해 결정문을 요구했다. 하지만 변호사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행정소송 안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결정문까지 전달하는 것은 변호사의 의무가 아닙니다.” 이미 행정소송 제기 기간(결정문 송달 후 15일)은 훌쩍 지나버린 뒤였다. A씨는 마지막 구제 기회를 허망하게 날렸다.
결정문 미전달, 변호사 ‘성실의무’ 정면 위반
하지만 ‘결정문 미전달’ 문제는 재판 지각과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손해배상 소송 전문인 이성준 변호사(법무법인 에스엘)는 “결정문을 전달하지 않아 소송 기회를 박탈한 것은 변호사 성실의무(변호사가 의뢰인을 위해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해야 할 기본적인 책임)의 정면 위반”이라며 “이는 징계 사유일 뿐만 아니라 명백한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라고 단언했다.
변호사가 “A씨가 소송을 안 한다고 했다”고 항변하더라도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의뢰인의 의사가 바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소송의 최종 결과와 다음 단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변호사의 기본 의무이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소송 제기 기간이 15일로 매우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정문 미전달은 ‘중대한 과실’에 해당한다.
대법원 판례 역시 “변호사의 과실로 상소(항소·상고) 기간을 놓친 경우, 상소심에서 승소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면 의뢰인이 입은 정신적 고통까지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어 A씨의 손해배상 청구에 힘을 싣는다.
결국 A씨는 자신을 변호해야 할 변호사를 상대로 또 다른 법정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부당해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선임했던 법률 대리인이, 이제는 손해배상을 받아내야 할 ‘피고’가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