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 공급, '방조'에서 '공동정범'으로... 229억 세탁 조직의 결정적 한 끗
대포통장 공급, '방조'에서 '공동정범'으로... 229억 세탁 조직의 결정적 한 끗
해외 사기 조직에 대포통장 공급하고 허위 상품권 업체까지 차린 '자금세탁 총책' 일당
그들에게 내려질 '사기죄 공동정범'의 법적 심판은?
해외 리딩방 '검은돈' 229억 세탁 조직의 실체

강남 한 호텔에서 압수한 현금다발 / 연합뉴스
부산 중부경찰서가 캄보디아, 필리핀 등 해외에 거점을 둔 주식투자 리딩방 사기 조직에 수백억 원의 사기 피해 금액을 세탁해 전달한 조직을 무더기로 검거하고, 총책 40대 A씨를 포함한 20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18일 밝혔다.
검거된 A씨 등 자금세탁 조직 84명은 수도권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해외 사기 조직원에게 범죄에 필수적인 대포통장을 공급하고, 서울과 경기 지역에 허위 상품권 업체를 설립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들은 마치 상품권 거래가 실제 있었던 것처럼 꾸며 범죄 수익금 229억 원을 세탁했고, 이 금액을 다시 해외 사기 조직원에게 전달한 혐의(사기,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를 받고 있다.
경찰은 강남의 고급 호텔에 위치한 조직의 은신처를 급습하여 현금 3억 9,500만 원을 압수하고 일부 금액을 기소 전 추징 보전했다. 현재 해외로 출국한 3명을 추적하며 조직 윗선과 범죄수익금 환수에 주력하고 있다.
단순 '대포통장 공급'이 수백억대 사기의 '공동정범'이 되는 결정적 순간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법적 쟁점은 대포통장 공급 등 자금세탁 행위가 단순한 '방조범'을 넘어 사기범행의 '공동정범'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다.
형법상 공동정범(제30조)과 방조범(제32조)은 형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법적 판단의 결과에 따라 처벌 수위가 좌우된다.
공동정범은 범죄의 실행에서 기능적 행위지배가 인정될 때 성립하며, 서로 다른 사람의 행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의사를 실행에 옮기는 공동가공의 의사를 필요로 한다.
방조범은 정범이 범행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 실행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단순 보조자의 역할에 머무른 경우다.
공동정범과 방조범을 가르는 핵심 기준은 바로 범죄에 대한 '기능적 행위지배'의 유무다.
공모자 중 일부가 직접 사기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전체 범죄에서 그 역할과 지위, 범죄 경과에 대한 장악력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범죄에 대한 본질적 기여가 인정되면 공동정범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판례가 제시하는 ‘기능적 행위지배’ 판단 기준 3가지
법원은 특히 리딩방 같은 조직적 투자사기 범죄에서 대포통장 공급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이러한 범죄는 총책, 유인책, 공급책, 세탁·인출책 등 점조직으로 이루어지며, 각 역할이 필수불가결하다.
1. 범행의 필수성과 중요성: "통장 없이는 범죄수익 실현 불가능"
대포통장 공급은 사기 조직이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 장기간 범행을 지속하고, 편취한 돈의 이동 경로를 숨겨 범죄수익을 현실화하는 데 필수적인 핵심 요소다.
판례는 대포통장 공급이 없었다면 피해금이 최종 귀속되는 곳이 드러나 범행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이는 범죄에 대한 본질적 기여에 해당한다고 본다. A씨 일당의 229억 원 자금세탁 행위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2. 조직 내 지위와 역할: "단순 통장 제공 아닌, 시스템 구축"
단순히 일회적으로 통장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A씨 일당처럼 조직적으로 자금세탁 조직을 운영하며 다수의 대포통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나아가 허위 상품권 업체까지 만들어 자금세탁 시스템을 구축한 행위는 단순 방조를 넘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범행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아 공동정범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전지방법원 판례에서도 대포통장 마련, 문제 해결 관여, 자금세탁 방법 논의 등을 공범으로서 실행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3. 범죄인식의 명확성: "막연한 불법 인식이 아닌, 구체적 예견"
대포통장 공급자가 해당 통장이 투자사기 등 구체적인 범죄에 사용될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는지 여부 역시 중요하다.
A씨 일당은 해외 사기 조직과 연계하여 대규모 자금세탁 조직을 운영했으므로, 자신들의 행위가 대규모 투자사기 범죄에 필수적으로 이용될 것을 충분히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법원은 구체적인 기망 방식이나 수법을 몰랐더라도 자신의 행위가 사기 등 재산범죄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인식·예견했다면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한다.
자금세탁 총책 일당의 법적 책임: 방조범을 넘어선 '공동정범'의 무게
종합적으로 볼 때, A씨 일당의 행위는 단순한 대포통장 공급자의 역할을 넘어 해외 사기 조직의 범죄수익 실현을 위한 필수적이고 조직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범죄 전반에 대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사기범행의 공동정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크다.
판례는 유령법인을 설립하고 그 명의로 대포통장을 개설하여 공급하고 총괄 지휘를 담당한 경우, 또는 허위 법인을 설립해 다수 계좌를 개설하고 후속 관리까지 한 경우 등에 공동정범의 죄책을 인정하고 있다.
A씨 일당의 조직적인 자금세탁 행위는 이러한 판례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구속된 20명을 포함한 개별 피고인들의 구체적인 역할 분담과 범행 관여 정도에 따라 법적 판단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재판 과정에서 각자의 책임 범위가 면밀히 검토될 전망이다.
피해 금액 229억 원의 규모와 조직적인 범행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A씨 일당에게는 단순 방조범보다 훨씬 무거운 법적 심판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