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조윤선 "전체 계획 있어야"...해수부에 '세월호 특조위' 조직안 작성 지시
[단독]조윤선 "전체 계획 있어야"...해수부에 '세월호 특조위' 조직안 작성 지시
'특조위 조사방해' 스모킹건은 해양수산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업무수첩
특조위 설립팀장은 "BH 시각으로 보고하라"라는 해양비서관 지시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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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보수단체 지원' 혐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윤선 전 수석=연합뉴스 한종찬 기자(C)저작권자 연합
지난 2015년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출범하기에 앞서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조직 내 진상 규명을 담당한 부서를 통제하기 위해 직접 조직도의 밑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특조위 조사 방해 활동 혐의를 재판 중인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 13부(부장판사 민철기)에 제출된 강용석 당시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업무수첩(‘강용석 업무수첩’)에 따르면, 윤학배 당시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은 조윤선 당시 정무수석의 지시를 받아 해양수산부에서 파견 나온 특조위 설립팀장에게 정부에게 유리한 조직도 구성안 작성을 재차 지시했다.
강용석 업무수첩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월 24일 당시 특조위 파견 해수부 공무원들은 새누리당에서 추천한 특조위 진상조사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연영진 당시 해수부 해양정책실장은 이 간담회에서 이뤄진 논의 내용을 ‘진상조사위 여당위원 간담회 결과 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으로 작성해 윤 비서관에게 이메일로 보고했다.
윤 비서관은 이 문건을 정무수석실에서 보고했고, 조 수석에게서 “전체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윤 비서관은 이 지시를 그대로 연 실장에게 전달했다. 연 실장은 다시 김남규 특조위 설립준비 팀장(해수부 파견)에게 “BH 시각으로 보고해 달라”며 특조위 사무처 조직안 작성을 요구했다.
이렇게 새누리당 추천 조사위원-해수부 파견 공무원-청와대 조율을 거친 ‘특조위 사무처 구성 및 예산요구안’은 역시 새누리당이 추천한 조대환 특조위 부위원장 명의로 2월 12일 전원위원회에 제출됐다.
조 부위원장이 제출안 주요 내용은 특조위에서 진상규명을 책임지는 조사국과 그 밑에 설치한 1~3과를 여당에서 추천한 사무처장 산하에 두는 것이었다. 특히 특별검사 임명을 담당하는 조사 1과를 특조위 부위원장을 겸하는 사무처장이 직접 통제하는 구도였다.
이와 달리 세월호 특조위에서 자체적으로 작성한 조직도는 조사국을 진상규명소위원회 소속으로 두는 방식이었다. 각 과의 조사활동을 바탕으로 조사국에서 진상규명 보고서를 작성하면 사무처의 개입 없이 진상규명소위원회를 거쳐 전체 조사위원이 참석하는 회의에 보고하는 구조였다.
다만 특조위가 이날 조 부위원장이 제출한 ‘해수부안’이 아닌 위원장안을 채택하면서 이같은 정무수석실의 개입은 바로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3월 특조위에서 채택된 사무처 구성안과 예산요구안을 반영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조사활동에 관여할 수 있는 구조의 시행령을 내놨다. 해수부 파견 공무원인 기획조정실장 직제를 신설해 종합보고서를 보고받아 진상규명 전반을 지휘하게 하는 식이었다.
청와대가 특조위 개입 관여를 포기하지 않자 이석태 당시 위원장(현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권영빈 당시 진상규명소위원장, 박종운 당시 안전사회소위원장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 농성에 들어갔다.
여론전이 부담스러웠던 청와대는 기획조정실장 자리를 행정지원실장으로 대체하고 업무 범위를 ‘기획 조정’에서 ‘협의 조정’으로 바꿨다. 하지만 이마저도 행정지원실장이 협의 명목으로 진상규명 조사 활동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결국 이같은 시행령은 5월 6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통과됐고 특조위는 뼈대부터 부실하게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