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조합장"이 찍은 직인에 날린 2억... 징역형 떨어졌지만 내 돈은 어디에?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가짜 조합장"이 찍은 직인에 날린 2억... 징역형 떨어졌지만 내 돈은 어디에?

2026. 01. 21 18:38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해임 후 3년 넘게 이어진 ‘유령 조합장’의 연극

피해 회복 위한 법적 실익 전격 분석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부산의 한 주택재개발 현장에서 해임된 전직 조합장이 무려 3년 동안이나 현직 행세를 하며 업체들로부터 수억 원을 가로채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무거운 형량을 선고했지만, 정작 돈을 날린 피해업체들이 원금을 회수할 길은 멀기만 하다. 징역형 선고라는 '정의 구현' 뒤에 숨겨진 실질적인 피해 회복의 한계와 법리적 쟁점을 짚어본다.


"내가 아직 조합장이다" 3년간 이어진 대담한 현직 연기

사건의 주인공인 70대 A씨는 원래 부산의 한 주택재개발 조합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020년 7월,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나 조합장 직위에서 불명예스럽게 해임됐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A씨는 해임된 사실을 숨긴 채 2023년 11월까지 무려 3년 4개월 동안 대외적으로 여전히 조합장인 것처럼 행세했다.


A씨는 조합장 시절 보관하고 있던 조합 직인을 가짜 계약서에 날인하는 수법을 썼다. 그는 대행업체 전 간부인 B씨와 공모하여 용역 계약을 원하는 업체들을 물색했다. 이들에게 분양 대행 광고나 에어컨 설치 용역권을 주겠다고 속여 약정금 명목으로 총 2억여 원을 챙겼다. 심지어 음식물처리기 설치 업자에게는 "다른 재개발 조합과의 계약을 도와주겠다"며 5,000만 원을 빌린 뒤 갚지 않는 대담함도 보였다.


협박 무마하려 또 다른 사기... 꼬리에 꼬리를 문 범죄의 늪

A씨가 이토록 무리한 범행을 이어간 배경에는 또 다른 범죄의 그림자가 있었다. 과거 A씨에게 철거 용역 대가로 9,000만 원의 뇌물을 건넸던 공사업체 영업사원 C씨가 변심한 것이 화근이었다. C씨는 돌연 "과거의 뇌물 공여 사실을 조합에 폭로하겠다"며 A씨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당시 A씨는 자신이 점찍은 후임자가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선거에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 결국 C씨의 입을 막기 위한 합의금이 필요했던 A씨는 이를 마련하기 위해 B씨와 손잡고 새로운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이다.


이에 대해 부산지법 형사7부(신형철 부장판사)는 사기 및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하고 9,000만 원의 추징을 명령했다(사건번호: 부산지방법원 2023고합XXX 등). 공범 B씨는 징역 6개월, 뇌물 공여 및 협박 관련자 C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징역 4년 6개월 확정, 그러나 '빈털터리' 피고인에게 돈 받을 수 있나?

법원이 A씨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었지만, 피해자들의 시선은 '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가'로 향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사 판결과 원금 회수는 별개의 문제다. 법원이 명령한 추징금 9,000만 원은 범죄 수익을 국가가 몰수하는 성격일 뿐, 피해자들에게 직접 돌아가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민사소송(형법 제750조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회수 가능성은 매우 낮다. 유사한 판례인 부산지방법원 2017. 8. 10. 선고 2016고단8605 판결을 보면, "피고인이 별다른 재산이나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다액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다면 변제 의사나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A씨 역시 70대의 고령인 데다 편취한 돈을 협박 무마용으로 탕진했을 가능성이 커 강제집행할 재산이 남아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조합에 책임 물을 수 있을까? '표현대리'가 유일한 희망인 이유

피고인들에게 재산이 없다면 피해자들은 "조합의 직인이 찍힌 계약서를 믿었으니 조합이 책임져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이 민법 제126조의 '권한을 넘은 표현대리' 쟁점이다. 만약 피해업체들이 A씨가 해임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고, 조합 직인이 찍힌 계약서를 믿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재개발 조합의 임원 해임 사실은 대개 등기부등본이나 조합 공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피해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해임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경우 조합의 책임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피해자들은 형사 재판 과정에서 '배상명령 신청'을 하거나, 신속하게 피고인들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 가압류하는 등 선제적인 법적 조치에 나서야만 단 몇 퍼센트라도 회수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