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부모는 자녀까지 이혼시키지 않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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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부모는 자녀까지 이혼시키지 않는다 (2)

2021. 05. 12 11:02 작성2021. 05. 12 15:17 수정
임수희 부장판사의 썸네일 이미지
sooheelim@scour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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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권리로서 면접교섭권이 규정된 지도 14년이나 되었음에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가 이혼하면 아이들까지도 한쪽 부모와 '이혼시키는' 것 같은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회 칼럼이 나간 후, "자녀와도 이혼"이라는 표현에 대해 어색함과 불편함을 피드백으로 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아이들과는 결혼한 것이 아닌데 아이들과 이혼이라니, 말이 어폐가 있고 거북하다는 것이지요.


네, 물론 그 표현은 문언 그대로는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메타포(metaphor·은유)로써 그러한 표현을 한 것이었고요. 그리고 바로 그 반응, 즉 어색하고 뭔가 꺼림칙하고 거북하고 불편한 바로 그 느낌을 한번 체감해 보시길 기대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문장으로 만들어서 써 보면 곧바로 느끼게 될 그 불편함! 즉 '자녀와 이혼한다'는 것은 얼마나 거부감을 주고 껄끄러운가요. 그런데 막상 우리 사회에서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 중에 한쪽 부모와 관계가 단절되는 예가 많음에도, 그걸 보면서는 불편함을 말하지 않고 문제로 지적하지도 않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놔두는 것일까요.


민법에 '면접교섭'이 명시된 지 30년이 넘었고 자녀의 권리로서 면접교섭권이 규정된 지도 14년이나 되었음에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가 이혼하면 자녀까지 한쪽 부모와 생이별을 함으로써 마치 부모는 자신들이 이혼하면서 아이들까지도 한쪽 부모와 '이혼 시키는' 것 같은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난 회에서 언급했던 사례처럼, 만 2세, 만 4세의 어린 아들과 딸을 부모가 각각 하나씩 데려가 키우기로 하면서 서로 안보고 각자 살기로 협의한 극단적인 경우만이 그에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는 많은 이혼 부모들이 법적 이혼 절차를 통과하기 위해 법원에 내는 서류의 하나로서, 양육협의의 내용 중 하나인 면접교섭에 대해 그냥 형식적으로 '한 달에 두 번', '매주 주말' 같은 식으로 적어 내고 말 뿐,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못하거나 심지어 기억조차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부모끼리 대충 적어서 법원에 내고 만 것일 뿐, 아이들과 상의하거나 아이들에게 앞으로 이러저러하게 진행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지 않아서 아이들은 아예 그러한 면접교섭 약속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연령이나 발달 상태와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대충 적어내서, 실제로는 이행 불가능하거나(예, 돌도 안 된 아기인데 '1달에 1번 1박 2일')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예, 아직 말을 못하는 아기인데 '자유롭게 언제든지')도 많습니다.


면접교섭 약속이 내용에 있어서 적정성이 보장되지 않고 그 이행에 관해 실현가능성이 떨어지게 된다면, 결국 면접교섭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의 이혼 이후 점차 한쪽 부모와는 멀어지고 단절되어 갈 가능성이 큽니다. 함께 살지 않는 비동거친 쪽의 부모와는 점점 만나지 않게 되고 연락조차 뜸해 지게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러한 상태에 놓인 비동거친이 자녀의 양육비를 자발적으로 매달 꼬박꼬박 잘 챙겨 줄 리도 만무하고요. 아이가 눈에서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양육비 지급 필요성이나 절박성도 못 느끼게 되기 쉬우며 따라서 그 지급의무를 해태하게 될 가능성도 커지게 되겠지요. (이 말이 결코 면접교섭의 미이행으로써 양육비의 미지급이 정당화 될 수 있단 뜻은 아닙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 후에 한쪽 부모, 즉 엄마 또는 아빠와 멀어져서 그 관계가 단절되어 간다면, 그 아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딸에게 엄마가 또는 아빠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들에게 엄마가 또는 아빠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 두 살 영아기에, 또는 네, 다섯 살 유아기에, 혹은 초등학생일 때, 나아가 중, 고등학생일 때 또는 사춘기에, 그 소중한 각각의 시기에 아이들에게 엄마 또는 아빠가 없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별이나 그 밖의 이유로 인해 아이에게 엄마 또는 아빠, 또는 그 양자가 없다(또는 없어진다)는 것과도 달리, 엄마나 아빠가 '있는데'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서 어느 한쪽 부모와는 '단절'된 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그로부터 필요한 양육과 돌봄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서 성인이 된다는 것이 아이에게 주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이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하고 영문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한쪽 부모와 헤어집니다. 그리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채로 그냥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신상이나 신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또 그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권리도 있으며 부나 모와 계속 만날 권리와 분리되지 않을 권리, 부나 모로부터 적정하게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이런 권리들은 나열해 써 놓아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모든 권리들이 깡그리 무시되고 아이는 마치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처럼 어느 한쪽 부모가 데리고 가서 키우면 족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심한 경우 사람의 아이에게는 한쪽 부모와의 갑작스럽고 기약 없는 결별이 주는 고통과 해악이 커서 '정서 학대'라고 평가될 수 있을 정도인데도 말이죠.


분명 그 영향과 의미가 클 것이고 부정적일 수 있을 텐데,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혼가정의 자녀의 면접교섭 문제에 대해서 애써 외면하고 회피해 온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혼가정의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아빠, 양친의 애정과 돌봄을 변함없이 골고루 받으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양육 받을 권리'의 문제를 우리는 그다지 중요하게 강조하지 않아 온 것 같습니다.


일차적으로 이혼 부모들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그들에게 맡겨 두고만 있는 분위기가 팽배할 뿐인데요. 사실 이혼 부모들은 이혼이라는 삶의 거대한 격변을 겪어내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정서적(감정적), 법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중첩되어 있는데다가, 상당수의 경우 그 자신들이 힘들어 무너지지 않도록 잘 견디고 헤쳐 나가는 것에만도 큰 에너지가 들고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그 와중에 자녀의 마음과 상황까지 잘 살피고 돌보면서 나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들에게 우리 자녀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요? 때론 우린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느끼는 우리 자녀들이기에, 이혼하시는 부모님들이 이혼 와중에는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혼 후 신변이 정리되고 어느 날 문득, 혼자 힘들어 하고 있는 자녀를 발견하고는 '아 내 소중한 자녀를 미처 신경쓰지 못했구나'하며 아차 하곤 합니다.


지난 회에 제가 이혼 사건에서 만난 젊은 부부, 어린 아들과 딸을 하나씩 각자 맡아 키우며 서로 안보고 살기로 양육협의를 해서 법원에 출석한 부부와 가사재판 절차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해 드렸었는데요. 다행히 그 30대 부부의 경우, 제가 강조한 '양육협의에 있어서 이혼 후 자녀들에게 엄마의 양육시간과 아빠의 양육시간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을 보장하기 위한 엄마와 아빠 사이의 양육협력관계의 구축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새롭게 양육협의를 했습니다.


즉 우리 민법 제843조, 제837조에서 미성년자녀를 둔 부모가 재판상 이혼을 하려는 경우, 반드시 미성년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는 양육협의로서, 양육자, 면접교섭, 양육비, 이 세 가지가 포함된 양육협의를 하도록 하되, 그 양육협의가 정말 그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는지 법원이 심사하고 보정해 주어 진정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는 양육사항을 도출하도록 되어 있는데요. 그 절차에서 위 부부는 처음에 자신들끼리 해 온 양육협의 내용이 판사로부터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지 않으니 새로이 협의를 하도록 보정권고를 받고 다시 양육협의를 한 것이지요.


물론 그 과정에서 위 부부는 애당초 그릇된 양육협의를 하게 된 이유, 즉, 이혼과 자녀양육을 둘러싼 그릇된 고정관념들과 오해 또는 자녀양육에 대한 몰이해를 바로잡기 위해서, 올바른 정보와 지식을 제공받는 부모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은 너무도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분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란 말이죠. 다시 말해서 우리가 부모로서의 모든 것을 알고 배운 상태로 자녀를 낳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결혼할 때 혹시 이혼할 때를 대비해서 이혼 후 자녀양육 방법을 미리 배우고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단지 몰랐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배우고 이해하고서는 그에 따라 실천을 하면 되는 것일 뿐입니다.


그 젊은 부부는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는 부모였기에, 법원에서 안내하는 이혼 부모교육에 잘 응했고, 또 그 이후에 이어진 아이들 상담, 부모 상담, 그리고 이혼 후 양육자 결정을 위한 양육자 평가 과정들, 면접교섭과 양육비 협의 및 세팅 과정들에 잘 참여하고 협조했습니다. 나아가 판사와 상담위원의 전문적 조언을 잘 수용하면서 자신들의 여건과 상황 하에서 자녀들의 복리를 최대한 도모하기 위한 이혼 후 양육사항에 대한 재협의를 잘 마치고 면접교섭에 대해서는 연습까지 잘 했습니다. 면접교섭할 때 지켜야 할 행동수칙(예컨대, 아이들 앞에서는 서로 웃으면서 인사하기, 아이들을 데려갔을 때 서로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언급을 하지 않기, 서로 상대방의 양육방식을 타박하지 않고 존중하기 등)도 정해서 지키려고 연습하면서 이혼 후 양육협력관계를 긍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이혼 후 각자의 여건이 경제적으로 도저히 어려워서 각각 원룸 정도 밖에 마련할 수 없었던 이 부부는, 어느 쪽도 아이 둘을 모두 키울 형편은 되지 않았던 관계로, 이혼 직후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아들에 대해서는 아빠, 딸에 대해서는 엄마로 하기로 했습니다(이는 매우 특이한 상황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아이들을 모아서 한쪽이 주양육를 하고 한쪽이 면접교섭을 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만 2세, 만 4세 두 아이를 한 어린이집에 보내서 어린이집을 거점으로 엄마, 아빠 모두 아이 둘을 수시로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도출해 냈고, 이로써 아직 어린 두 아이가 서로 헤어지지 않으면서도 엄마, 아빠 모두의 밀착 양육을 받을 수 있는 해법을 냈습니다. 즉 두 아이를 한 어린이집에 보내서 주간에는 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함께 지내도록 하고, 엄마와 아빠 모두 그 어린이집 주변에서 집을 얻어서 아침, 저녁으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면서 다른 자녀도 함께 보거나 언제든 어린이집을 들여다 볼 때 어느 아이라도 볼 수 있도록 하기로 한 거죠. 그리고 주말에는 아이들을 모아서, 한 주는 엄마 집에서, 한 주는 아빠 집에서, 아이들 모두가 격주로 엄마, 아빠와 각각 잘 지낼 수 있도록 세팅을 했습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서는 융통성 있게 주말 면접의 순서를 변경할 수도 있고요.


이 젊은 부부는 성격이 맞지 않아서 도저히 부부로서는 더 이상 함께 살지 못하겠다고 이혼을 결정했지만, 자녀의 양육에 있어서는 이혼 후에도 엄마, 아빠, 즉 '부와 모로서의 파트너쉽을 기반으로 한 양육협력관계'를 잘 구축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교육과 상담을 통해 잘 이해하고 잘 체득했으며 실제로 연습하고 관계 내에서 구현해 내면서 정말 바람직한 부모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이 젊은 부부를 보면서, '아 과연 나는? 내가 만약 이혼을 하게 된다면 내 배우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있더라도 자녀양육협력을 위한 측면에서는 극복해 내고 새롭게 교육이나 상담을 통해 긍정적 양육협력관계를 구축해 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분들이 비록 젊었지만 무척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들이라면 누구라도 이들처럼 이혼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있어서 소중한 자녀를 절대 놓치지 않고 잘 보호하고 돌보면서 수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도 들었습니다.


이혼 후 양육협력관계 구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면접교섭이란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는 부모의 이혼 후 각각의 상태, 상황, 여건 등을 물론 고려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자녀들의 연령이나 발달 상태, 교육 단계 등에 따른 필요 기타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도록 정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자녀의 연령이나 상황 별로 어떤 식으로 면접교섭을 하는 것이 좋은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다음 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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