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커 한 장 붙였으니 끝?" 모텔 욕실 사고, 법원은 누구 손을 들어줄까
"스티커 한 장 붙였으니 끝?" 모텔 욕실 사고, 법원은 누구 손을 들어줄까
'안전배려의무'와 '이용자 과실' 사이, 법조계가 분석한 업주 책임의 무게

모텔 욕실에서 투숙객이 다쳤을 때 '주의' 스티커만으로 업주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여행의 마지막 기억은 '쿵' 소리와 함께 찾아온 응급실이었다.
퇴실을 준비하던 A씨는 물기 흥건한 모텔 욕실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부딪쳤다. 두피가 찢어지는 부상, 전치 3주 진단. 하지만 돌아온 것은 "미끄럼 주의 스티커를 붙였으니 책임없다"는 모텔 측 보험사의 냉정한 답변이었다.
보험사는 사고 원인인 물기를 투숙객이 만들었고, 스티커로 경고 의무도 다했으니 시설 하자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모든 책임을 A씨의 부주의로 돌린 것이다. A씨는 "애초에 타일 자체가 비눗물 없이도 휙휙 미끄러질 만큼 위험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스티커가 면죄부?"…업주 목죄는 '안전배려의무'
법의 저울은 달랐다. 우리 법원은 숙박업자에게 단순히 방을 빌려주는 것을 넘어, 고객이 안전하게 시설을 이용하도록 보호할 '안전배려의무'를 지운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숙박업자는 고객에게 위험이 없는 안전하고 편안한 객실 및 관련 시설을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안전을 배려하여야 할 보호의무를 부담한다"고 꾸준히 밝혀왔다.
욕실의 물기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위험이다. 법조계는 업주가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거나 기능성 타일을 시공하는 등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심준섭 변호사(법무법인 심)는 "모텔 측 시설관리 부주의와 이용객 부주의가 합쳐진 사고"라며 "소송 시 모텔 측 책임을 40~50%가량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초에 '미끌미끌' 타일…건축법 위반 가능성은?
사건의 본질은 '타일 재질' 자체일 수 있다. 현행 '건축물의 피난ㆍ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은 욕실, 화장실 바닥 마감재는 물에 젖어도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는 재질을 사용하도록 명시한다. 만약 모텔이 이 기준에 미달하는 타일을 썼다면, 이는 '공작물 설치·보존상의 하자'(민법 제758조)에 해당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윤관열 변호사(법률사무소 조이)는 "타일 자체가 사회 통념상 용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하게 미끄럽다면 시설상 하자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소송 시 전문가 감정을 통해 타일의 마찰 계수를 측정하는 것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용자도 조심했어야"…'과실상계'와 신중론
물론 법원이 업주에게 100% 책임을 묻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손해배상액을 정할 때 피해자의 과실도 함께 따지는 '과실상계' 원칙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A씨 역시 바닥이 미끄러운 상황을 인지하고도 충분히 주의하지 않은 점이 일부 과실로 잡힐 수 있다.
여기에 신중론도 제기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타일의 미끄러움이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을 현저히 넘었다는 점을 피해자가 객관적 데이터로 입증해야 하는 만큼, 소송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주의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입증 책임의 무게는 피해자에게 있다는 현실적 조언이다.
결론적으로 법조계는 A씨가 민사소송을 제기할 경우, 치료비와 위자료 등 상당 부분 배상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주의' 스티커 한 장이 업주의 모든 책임을 막아주는 '만능 방패'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번 사례는 단순 경고를 넘어 실질적인 안전 확보가 업주의 진정한 의무임을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