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배달하세요” 고급 아파트 갑질…배달기사, 법으로 맞설 수 있나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걸어서 배달하세요” 고급 아파트 갑질…배달기사, 법으로 맞설 수 있나

2025. 08. 05 14:23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오토바이 금지, 배달 거절 페널티

이중 압박에 놓인 배달 노동자들

배달 오토바이 출입 금지, 신분증 제출, 도보 배달 강요 등 고가 아파트의 '배달 갑질'이 논란이다. /연합뉴스

살인적인 폭염에도 배달기사가 걸어서 음식을 배달해야만 하는 '갑질 아파트'가 늘고 있다. 입주민의 사생활 보호와 안전을 이유로 한 일방적 통행 제한에 배달노동자들은 "급을 나누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린다. 이런 '갑질'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사유지라는 '철옹성'

서울 강남과 서초 등 고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배달 오토바이의 지상 출입은 물론, 지하주차장 진입까지 막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배달기사들은 단지 입구에 오토바이를 세운 뒤, 신분증이나 휴대전화를 경비실에 맡기고 나서야 걸어서 각 세대로 이동할 수 있다.


한 배달기사는 "단지가 너무 커 10분 이상 걸어 들어가는 경우도 흔하다"며 "그 시간이면 다른 배달 하나는 더 처리할 수 있는데, 결국 금전적 손해로 이어진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사는 "하이클래스 주민의 특권을 위해 우리를 잠재적 위험인물로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배달기사 커뮤니티에서는 자체적으로 '깐깐한 아파트 명단'을 만들어 공유하며 대응하고 있지만, 아파트 측은 '사유지 관리권'을 내세우며 요지부동이다.


사유지라도 '무소불위' 아냐

아파트 측의 주장은 법적으로 타당할까. 아파트 단지가 사유지인 것은 맞지만, 그 권리가 무제한은 아니다. 핵심은 단지 내 도로를 '일반인의 자유로운 통행이 허용된 공간'으로 볼 수 있느냐다.


법원은 ▲아파트 단지와 주차장의 규모·형태 ▲차단 시설 설치 여부 ▲경비원에 의한 출입 통제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로교통법상 '도로'인지를 판단한다(서울고등법원 2022누57130 판결). 만약 불특정 다수가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개방형 단지라면, 배달기사의 통행권을 부당하게 막을 수 없다는 의미다.


설령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폐쇄형 단지일지라도 문제는 남는다. 대법원은 사유지라 할지라도 일반 공중의 통행에 제공된 경우 소유권 행사에 일정한 제한이 따를 수 있다고 본다(대법원 98다56232 판결). 배달 서비스를 주문한 입주민의 권리와 배달노동자의 '직업수행의 자유' 역시 보호받아야 할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거부하면 페널티…플랫폼에 발목 잡힌 배달기사

더 큰 문제는 배달 플랫폼의 페널티 시스템이다. 배달기사들은 "이런 아파트는 배달을 거부하고 싶어도 거절 횟수가 제한돼 있어 어쩔 수 없이 수락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상 배달이 강제되는 구조 속에서 아파트의 '갑질'은 더욱 힘을 얻는다.


이러한 플랫폼의 페널티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플랫폼 운영자에게 배달종사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배달 소요 시간을 산업재해를 유발할 정도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폭염 속에서 도보 배달을 강요받는 상황은 명백한 산업재해 위험이다. 배달 거부에 대한 페널티는 기사들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해 위험을 감수하고 배달을 수행하게 하므로, 해당 법규의 취지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


배달기사, 무엇을 요구할 수 있나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배달기사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명확하다.


첫째, 안전한 근로환경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폭염 등 위험한 상황에서는 배달을 거부할 수 있으며, 플랫폼은 이를 이유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


둘째, 합리적인 추가 보수를 요구할 수 있다. 도보 배달, 장거리 이동 등 특별한 노동이 요구되는 곳에 대해서는 플랫폼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추가 배달료를 지급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셋째, 집단적 대응도 가능하다. 노동조합 등을 통해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플랫폼을 상대로 공식적인 문제 제기와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아파트 단지, 플랫폼, 배달노동자라는 세 주체의 양보와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아파트는 완전한 출입 제한 대신 지하주차장 이용 허용 등 합리적 대안을, 플랫폼은 불투명한 페널티 제도를 개선하고 갈등 중재에 나서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