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여친 구함" 텔레그램·오픈채팅의 덫… 창원 참극이 경고한 '무법지대'
"10대 여친 구함" 텔레그램·오픈채팅의 덫… 창원 참극이 경고한 '무법지대'
20대 피의자, 익명 앱으로 접근해 범행
'치외법권' 텔레그램 등 규제 공백에 법적 안전장치 '비상'

창원 흉기 사건 현장 살피는 경찰 /연합뉴스
창원시의 한 모텔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은 우리 사회의 디지털 공간이 얼마나 허술한 법적 안전장치 위에 놓여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중학생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은 이 끔찍한 비극의 시작점은 다름 아닌 누구나 쉽게 접속할 수 있는 'SNS 오픈채팅방'이었다. 10대 피해자들은 아무런 보호 장벽 없이 20대 성인 남성과 연결되었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이어졌다.
"연락 끊기자 돌변"… 10대 유인해 범행 키운 '익명 채팅'
사건의 전말은 충격적이다. 피의자인 20대 A씨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SNS 오픈채팅방을 통해 숨진 10대 B양을 처음 알게 됐다. 온라인상의 가벼운 만남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졌고, A씨는 범행 2주 전 B양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A씨는 연락이 닿지 않는 B양이 다른 이성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트에서 흉기를 미리 구매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결국 모텔 앞에서 B양과 그의 친구들을 마주친 A씨는 흉기를 휘들러 끔찍한 인명 피해를 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범해 보이는 메신저 앱이 일면식도 없던 성인 남성과 미성숙한 10대를 연결하는 '범죄의 고속도로' 역할을 한 셈이다.
성범죄 36%가 메신저 통해… 텔레그램은 법망 비웃는 '치외법권'인가
문제는 이번 사건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여성가족부의 분석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중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의 비율이 36.1%에 달한다. 특히 카카오톡 오픈채팅뿐만 아니라 텔레그램(Telegram)과 같은 해외 기반 플랫폼은 별도의 신원 확인이나 연령 인증 절차 없이도 불특정 다수와 대화할 수 있어, 성인 범죄자가 10대를 유인하는 가장 손쉬운 통로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서는 현행법상 이러한 익명 채팅방을 규제할 실효성 있는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을 꼬집는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청소년 유해 정보를 차단할 의무가 있지만,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강력한 종단간 암호화 기술을 앞세워 국내법의 적용과 수사기관의 모니터링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
실제로 법원은 텔레그램을 이용한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엄벌하는 추세다.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판매한 피고인에게 징역형을 선고(2023고합17)했으며, 수원지방법원 역시 유사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2022고합624)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러한 범죄가 "성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아동·청소년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법적 처벌은 범죄가 발생한 뒤의 사후약방문일 뿐, 예방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술 살 때처럼 신분증 검사하라"… 텔레그램 등 '연령 인증' 의무화 시급
가장 시급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연령 인증 시스템'의 의무화다. 현재 청소년 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은 청소년 유해 매체물에 대한 규제를 명시하고 있지만, 오픈채팅방 자체를 유해 매체로 지정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오픈채팅방 전체를 금지하기보다는, 성인과 청소년이 접촉할 수 있는 익명 채팅 기능에 한해 강제적인 연령 인증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의 판례(2019고정619)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프라인 업소는 청소년의 연령을 확인할 엄중한 책임이 부여된다. 이와 같은 법리를 온라인 플랫폼에도 적용하여, 서비스 제공자에게 이용자의 신원을 확인할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텔레그램과 같이 국내에 법인을 두지 않은 해외 사업자에 대해서는 대리인 지정 제도를 대폭 강화하고, 국제 공조를 통해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10대를 노리는 범죄의 고리는 텔레그램과 오픈채팅방을 통해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해외 앱이라 규제가 어렵다"는 변명만으로는 더 이상 아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입법부는 과잉금지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청소년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