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로 지지고, 빗자루로 때리고, 소주 들이붓고… 학폭 피해자, 끝내 가해자를 찔렀다
라이터로 지지고, 빗자루로 때리고, 소주 들이붓고… 학폭 피해자, 끝내 가해자를 찔렀다
3시간 지옥 같은 괴롭힘 끝에 흉기로 살해
1심 실형→2심 집행유예

동창의 잔혹한 괴롭힘 끝에 소년은 흉기를 휘둘렀다. /셔터스톡
2024년 4월 14일 새벽, 한 소년이 자신의 집에서 동창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끔찍한 괴롭힘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1심과 2심 법원은 전혀 다른 판결을 내놓았다.
1심은 소년에게 징역 장기 5년, 단기 3년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2심은 이를 뒤집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며 소년을 석방했다.
한 소년의 인생을 가른 두 번의 재판, 그날 밤의 진실과 법원의 고뇌를 판결문을 통해 들여다봤다.
그날 밤, 소년의 집에서 벌어진 일
피고인 A군(당시 19세)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었다. 2024년 4월 13일 밤 11시 40분경, 중학교 동창인 피해자 B군이 친구와 함께 A군의 집으로 찾아왔다. B군은 A군을 오랜 기간 괴롭혀 온 가해자였다. 그날 밤, A군의 집은 지옥으로 변했다.
판결문에 기록된 B군의 가혹행위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피고인의 신체 부위, 머리카락, 귀, 눈썹 부위를 라이터 불로 지지고, 피고인에게 옷을 벗으라고 한 뒤 자위행위를 시키고, 면봉, 바둑알, 연필을 피고인의 신체 부위에 넣으라고 시키면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때리고... 강제로 소주를 붓는 등 약 3시간 동안 피해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자..."
B군은 집이 더럽다며 냄비에 물을 받아 거실과 방에 뿌리고는 A군에게 닦으라고 강요했다. 머리카락을 강제로 자르고, 나체 상태로 변기 위에 올라가게 한 뒤 비웃었다. 이 모든 끔찍한 행위는 B군의 친구가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친구는 A군에게 "네 얼굴 봐라. 어떻게 연애를 하냐", "이번 달 말까지 집 팔고, 그 돈으로 지방흡입하고 얼굴 성형 해" 와 같은 모욕적인 말을 퍼부으며 인격을 짓밟았다.
A군이 고통에 울부짖자, B군은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부서질 때까지 때렸다.
절망 끝의 선택, 그리고 1심의 단죄
3시간에 걸친 악몽 같은 시간이 흐른 새벽 2시 30분. B군은 A군에게 '옆방의 매트리스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방을 나선 A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주방의 식칼이었다. A군은 식칼을 들고 B군에게 다가가 누워있던 그의 가슴을 한 차례 힘껏 찔렀다.
재판에 넘겨진 A군. 1심 재판부(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는 A군의 살인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A군이 수사기관에서 "그 한 번으로도 피해자를 죽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더 찌르지 않았다"고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군이 겪은 고통을 깊이 헤아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인격말살에 이를 정도의 폭력과 가혹행위를 가하였던바, 피고인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동기에 상당한 정도로 참작할 만한 사정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론은 실형이었다. 재판부는 "살인범죄는 국가와 사회가 보호해야 할 가장 존귀하고 절대적인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A군에게 징역 장기 5년, 단기 3년을 선고했다.
2심의 반전, "살인이 아닌 방어적 몸부림"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심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A군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핵심은 '심신미약' 인정 여부였다. 2심 재판부는 A군의 상태를 더욱 면밀히 살폈다. 재판부는 A군이 겪고 있던 지적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ADHD뿐만 아니라, 사건 당시 처했던 극한의 상황에 주목했다.
"피고인이 놓인 상황은 발달장애인이 아닌 정상적인 청소년들도 충분히 심신미약의 정신적 패닉상태에 빠질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이는데, 피고인은 특히 이 사건 당시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하였고 강제로 술까지 마신 상태였다."
2심 재판부는 A군이 "정신적으로 붕괴된 상태"에 있었으며, 범행이 계획된 살인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적 몸부림"이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지속적인 학대로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진 A군에게 경찰에 신고하는 등 합리적인 대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신적인 극단에 내몰린 피고인은 당시 자신의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피해자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그릇된 판단을 내리고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A군의 책임을 감경했다.
결국 2심 재판부는 A군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끔찍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살인 사건의 가해자가 된 소년은 그렇게 다시 사회로 돌아올 기회를 얻게 됐다.
[참고]
서울고등법원 (춘천)2024노195 판결문 (2025. 2. 13. 선고)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제2형사부 2024고합40 판결문 (2024. 9. 5.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