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실수로 사라진 학폭 사과문…'엄벌 탄원' 부모의 뒤엉킨 운명
학교 실수로 사라진 학폭 사과문…'엄벌 탄원' 부모의 뒤엉킨 운명
학교 행정 착오로 가해자 사과문 전달 누락…법조계 "추가 의견서로 상황 바로잡고 피해 사실 다시 알려야"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사과문이 학교 행정 착오로 피해자에게 전달되지 않아, 이를 조치 불이행으로 오해한 피해자 측이 엄벌 탄원서를 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사과문은 오지 않았다"…분노의 탄원서 냈는데, 학교의 충격 고백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사과 편지가 학교의 어이없는 실수로 증발하며, 엄벌을 외쳤던 피해자 부모의 탄원서가 법정에서 길을 잃었다.
가해자의 사과만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끝내 받지 못하자 '조치 불이행'이라며 엄벌 탄원서를 냈는데, 뒤늦게 학교의 행정 착오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한순간의 오해가 재판 결과를 뒤바꿀 수 있는 아찔한 상황에 놓였다.
"사과 한 장 없었다" 분노의 탄원서…학교의 뒤늦은 고백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는 가해 학생에게 '서면 사과'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약속된 기한이 지나도록 피해 학생 측은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피해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부모는 가해자의 불성실한 태도를 문제 삼아 재판부에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모든 것이 가해자의 뻔뻔함 때문이라 믿었던 순간, 학교의 전화 한 통이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가해 학생은 기한 내에 사과문을 제출했습니다. 저희 행정 착오로 전달이 누락됐습니다."
이 한마디에 피해자 측은 깊은 혼란에 빠졌다. 사실과 다른 탄원서가 재판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오히려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빌미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밤잠을 설치게 했다.
소년재판의 핵심은 '반성'…사과문 썼다는 사실, 가해자엔 '방패'
법률 전문가들은 가해 학생이 학폭위 조치를 이행했다는 사실 자체가 소년재판에서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년재판은 형사처벌을 통한 응징보다 가해 청소년의 교화와 개선(건전한 성장 도모)에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가해자의 '반성 정도'와 '개선 의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살핀다.
장휘일 더신사 법무법인 변호사는 "조치를 이행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법원이 이를 정상참작(유리한 사정으로 고려) 요소로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록 학교 실수로 전달되지 않았더라도, 가해자가 '사과문 작성'이라는 의무를 다했다는 점은 재판에서 자신을 방어할 '방패'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썼다는 사실이 전부는 아니다…'진정성'과 '계속된 고통'이 변수
그렇다고 가해 학생이 무조건 가벼운 처분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조치 이행이라는 '사실'만큼이나 그 과정의 '진정성'과 '피해자의 고통' 역시 재판의 무게추를 움직이는 핵심 변수라고 지적한다.
박성현 법률사무소 유(唯) 변호사는 "가해자가 조치를 뒤늦게 이행한 점, 피해자가 오랜 기간 조치 미이행으로 인한 추가적인 심리적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 등을 강조하면 법원이 가해자의 책임을 여전히 무겁게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과문을 썼다는 행위만으로 모든 잘못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전경석 법률사무소 오율 변호사 역시 "사과문을 작성했다는 것만으로 소년보호처분이 불처분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피해 학생 측에서 가해자가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다른 정황과 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다는 점을 잘 주장하면 가해 학생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오해였다" 인정하고, 고통을 다시 증명하라…'추가 의견서'가 마지막 카드
결국 법조계의 공통된 조언은 '상황을 바로잡고, 그럼에도 엄벌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호소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재판부에 '보충 의견서'나 '추가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안영림 법무법인 선승 변호사는 "재판부에 사실관계 오류를 바로잡는 문서를 다시 제출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새로운 의견서에는 '학교의 실수로 사과문 전달이 누락된 오해가 있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 뒤, ▲형식적인 사과문 제출과 별개로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 ▲조치 이행이 늦어지면서 피해자와 가족이 겪은 추가적인 정신적 고통 ▲피해 회복을 위한 다른 노력은 전무했다는 점 등을 구체적으로 담아내야 한다.
이번 사건은 학폭 처리 과정의 행정적 공백이 한 가족의 희망과 분노를 어떻게 뒤흔들고, 소년재판이라는 섬세한 과정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공은 오해를 바로잡고 피해의 깊이를 다시 한번 호소해야 할 피해자 측과, 모든 사정을 종합해 소년의 미래와 피해자의 상처를 함께 저울질해야 할 재판부에게로 넘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