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 마스크 400만장 구입한 피해자들이 배상받기 위해선, '서부지검' 역할이 중요하다
무허가 마스크 400만장 구입한 피해자들이 배상받기 위해선, '서부지검' 역할이 중요하다
무허가 마스크 1000만장 유통⋯약사법 위반으로 송치
의도적으로 구매자 속였는데 왜 '사기 혐의'는 빠졌을까

지난 29일 양천구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관계자가 적발된 무허가 KF94 마스크(가운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정품 'KF94' 마스크였다. 하지만 안에 있는 건 성능 전혀 검증되지 않은 마스크. 포장 사고도 아니었다. 애초에 업체가 노리고 제작한 불법 마스크였다.
그렇게 4개월간 약 1000만장의 불량 마스크가 제작⋅유통됐다. 시가로 약 40억원 상당. '가짜 마스크' 판매 사기 범죄 중 역대 최대 물량이었다. 식약처는 29일 "시중에 이미 팔린 것만 해도 약 400만장"이라고 밝혔다.
품질이 확인 안 된 불량 마스크를 잘못 썼다간 걸리지 않을 수 있었던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쁜 범죄였다. 검거 소식이 알려지자 한때 이 업체가 판매한 불량 마스크를 파악하기 위한 감별법이 인터넷을 달굴 정도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가짜 마스크를 팔아 돈을 벌었으니 당연히 '사기'일 것 같았지만, 이 업체 대표에게 적용된 혐의 중에는 '사기' 혐의가 없었다.
업체 대표는 현재 구속된 상태다. 적용된 혐의는 '약사법 위반' 만이다.
수백만 명의 구매자를 속여 수익을 올렸지만 사기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건, 이 사건을 최초 수사한 곳의 특수성 때문이다.
식약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은 특별사법경찰 조직이다. 이들이 수사할 수 있는 범죄는 아주 제한적인데, 약사법 위반 사건은 수사할 수 있지만 형법상 사기에 대해서는 수사 권한이 없다.
사기 혐의가 적용되는지 여부가 중요한 건, 피해자 구제에 있어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서다. 가해자 혐의에 사기죄가 빠져 있다면 피해자는 기나긴 민사소송을 거쳐야 한다.
이때 넘어야 할 벽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업의 책임 여부와 인과관계, 손해액 등을 일일이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민사소송 절차를 거치게 되면 시간⋅비용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변호사들은 밝혔다.
반면 사기죄가 인정되면 아주 간단하게 피해구제가 가능하다. 소송촉진법상 '형사배상명령' 제도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사기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형사법정에 신청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피고인에 대한 유죄 판결과 동시에 "범죄 행위로 발생한 피해를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명령이 나온다.
민사 소송을 거치지 않고도 동일한 효력을 지닌 판결을 형사법정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법무법인 온세상의 설현섭 변호사는 "법원에 영수증이 제출된다면, 피해자가 구매한 마스크 대금이 인정될 것"이라고 했고, 법무법인 태율의 조연빈 변호사도 "사기죄로 발생한 직접적인 물적 손해(마스크 구매 대금)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상 금액은 마스크 구입비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 사기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식약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에서라면 얼마든지 사기 혐의를 추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30일 로톡뉴스와 통화에서 "서울서부지검에 이 사건을 송치했다"고 밝혔다. 실제 사기 혐의 적용 여부가 서울서부지검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법률 자문

이런 이유에서 변호사들은 "사안의 내용을 살펴봤을 때 당연히 사기죄가 성립하는 사안"이라고 분석했다.
법무법인(유)에이스의 옥민석 변호사는 "가짜 마스크를 KF94 마스크인 것처럼 속여 판매한 이상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오늘(30일) 오전 인천지법에서 비슷한 수법을 쓴 업체가 약사법 위반뿐 아니라, 사기죄로 처벌됐다"고 전했다.
조연빈 변호사 역시 "비슷한 사건에서 두 혐의가 동시에 적용된 판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사건 업체 역시 KF94 성능의 마스크를 공급할 능력이나 의사 없이, 구매자를 속여 수익을 얻었으므로 사기죄가 당연히 성립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이날 로톡뉴스와 통화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을 할 수 없다"고 밝힌 상태다.
사기 혐의가 적용돼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이어지면 '형사배상명령'을 선택할 권리가 생기지만, 언제나 배상명령이 나오는 건 아니다. 결국 민사소송으로 가야 할 수도 있다. 사안이 복잡하거나 다툼이 있는 경우에 그렇다.
법률사무소 서약의 신성현 변호사는 "형사배상명령이 민사소송보다 절차상 간편한 건 분명하지만, 사안이 복잡하거나 다툼이 있는 경우 각하되는 등 실제로는 형사배상명령을 신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결국 민사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제법 있다"고 밝혔다.
민사소송으로 가더라도 사기 혐의의 적용 여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사기죄가 적용돼 유죄가 나온 경우, 피해자는 민사소송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선다"고 말했다.
사기 혐의가 유죄라는 건, 사기꾼이 기망(欺罔⋅남을 속여 넘김)이라는 수단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관계를 법원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민사 법정에서 입증책임이 있는 피해자 입장에서 강력한 증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