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 9천만원 받고 식당 넘긴 뒤 '꼼수 재창업'⋯매출 23억 올린 얌체 사장님
권리금 9천만원 받고 식당 넘긴 뒤 '꼼수 재창업'⋯매출 23억 올린 얌체 사장님
매수인은 1억 날리고 폐업
겹치는 메뉴에 덜미 잡혀

권리금 9,000만 원을 받고 식당을 넘긴 뒤 근처에서 유사 중식당을 연 전 사장에게 법원이 경업금지 위반을 인정했다. /셔터스톡
권리금 9,000만 원을 받고 식당을 넘긴 사장님이 "5년간 근처에서 동종 영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깼다.
불과 1.4km 떨어진 곳에 새 식당을 차린 뒤, 사장님이 내놓은 변명은 황당했다. "양꼬치 가게 안 한다고 했지, 마라탕 파는 건 문제없지 않으냐"는 주장이었다.
이른바 '꼼수 창업'으로 볼 수 있는 이 사건, 법원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춘천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에서 연이어 선고된 판결문을 통해 얌체 사장님이 맞이한 결말을 짚어봤다.
"5년간 양꼬치 관련업 안 하겠다"던 약속, 1년도 안 돼 산산조각
사건의 발단은 202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고 A씨와 B씨는 춘천에서 양꼬치 식당을 운영하던 피고 C씨 부부로부터 가게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보증금 2,000만 원짜리 점포였지만, 원고들이 피고 측에 지급한 권리금은 무려 9,000만 원에 달했다. 마라탕, 꿔바로우 등 식당에서 팔던 총 24종 메뉴의 레시피와 조리법, 그리고 기존 고객층을 온전히 물려받는 대가였다.
불안했던 원고들은 계약서 특약사항 제9조에 "양도인은 양도 후 5년간은 춘천에서 양꼬치 관련업을 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경업금지조항을 못 박았다.
하지만 이 약속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깨졌다. 피고들은 이듬해 식당에서 걸어서 불과 19분 거리(약 1.4km)에 중식당을 슬그머니 개업했다.
이 식당을 폐업한 뒤에는 다시 2.7km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식당을 열고 버젓이 영업을 이어갔다. 배달앱에서도 이들은 원고들과 똑같은 중식 카테고리에서 경쟁하며 파이를 나눠 먹었다.
법정 싸움의 핵심⋯ 메뉴 40종 vs 21종 vs 18종
법정에 선 피고들은 당당했다. 특약사항에 적힌 문구가 '양꼬치 관련업'이라는 점을 파고들었다. 자신들이 새로 차린 식당은 양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 양꼬치를 주력으로 팔지 않으니, 경업금지 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1심 재판부(춘천지법 제2민사부)는 피고들의 말장난에 넘어가지 않았다. 법원은 세 식당의 메뉴판을 낱낱이 해부해 비교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던 메뉴 40종 vs 21종 vs 18종의 치열한 진실 공방이 벌어진 순간이었다.
재판부의 분석 결과는 명확했다.
- 원고들이 인수한 본래 식당의 메뉴는 총 40종
- 피고들이 첫 번째로 몰래 차렸던 식당의 메뉴는 총 21종
- 두 번째로 차려 운영 중인 식당의 메뉴는 총 18종
메뉴판을 겹쳐보자 피고들의 꼼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첫 번째로 몰래 차린 식당의 21종 메뉴 중 무려 17종이, 두 번째로 차린 식당의 18종 메뉴 중 13종이 원고들의 식당 메뉴와 정확히 일치했던 것이다.
마라탕, 마라샹궈, 꿔바로우, 지삼선, 토마토계란볶음 등 식당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리들이 고스란히 중복됐다.
1심 재판부는 "권리금 9천만 원은 양꼬치뿐만 아니라 마라탕 등 중식 관련 메뉴 전체의 레시피를 전수받은 대가"라며 "특약사항의 양꼬치 관련업은 본래 식당과 경쟁 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중식 요식업을 의미한다"고 일축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일갈 "매출 23억 올리는 사이, 원고는 급기야 폐업"
피고들은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서울고법 춘천 제2민사부)의 시선은 한층 더 매서웠다. 재판부는 피고들의 기만적인 행태와 그로 인해 원고들이 겪은 참담한 피해를 짚으며 피고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경업금지기간 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위 의무를 위반하였고, 그 기간 동안 올린 매출이 약 23억 원에 이른다"고 꼬집었다.
피고들이 꼼수로 배를 불리는 사이 원고들의 삶은 무너지고 있었다. 재판부는 이어 "원고들이 약 1억 원에 이르는 돈을 지급했음에도 피고들의 위반으로 영업양도 실효성을 기할 수 없게 되어 급기야 폐업에 이르게 된 점"을 강조하며 원고들의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인정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이 인정한 위자료(각 500만 원)가 가볍다고 판단해, 피고들이 원고들에게 각 1,000만 원씩 총 2,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배상액을 두 배로 늘렸다.
아울러 피고들이 운영 중인 식당의 영업을 전면 폐지하고, 2025년 7월 21일까지 춘천시 내에서 마라탕, 마라샹궈 등을 판매하는 식당 영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철퇴를 내렸다.